▶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나는 굴착기를 멈추지 않는다. 암석에 부딪히면 불꽃이 튀겼다. 번쩍거리는 것이 나의 가슴속으로 튀었다. 아무렴, 나를 산산이 깨뜨려 보렴, 입술을 깨물었다. 어둠 속에서도 시커먼 석탄이 쏟아져내려서 발끝서부터 가슴까지 차올랐다. 샘이 소리를 질렀다. 혁, 천천히 해라, 마귀새끼라도 쫓아오냐? 샘은 큰 삽으로 석탄을 모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잘하는 것이 없었다. 공부도 그랬고, 운동도, 음악, 미술, 글짓기 등 아무 것에도 재주가 없었다. 열등생에 가까웠다. 게다가 배짱마저도 없었다. 어떤 아이는 내가 잘 웃는다고 못마땅해서 따귀를 때렸다. 학교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결석이나 조퇴는 하지 않았다.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나는 잊혀진 아이가 됐다. 형과 누나들은 학기가 끝날 때마다 신이 나 했다. 우수한 성적에다 뛰어난 재능으로 무수한 상패를 가져왔다.
부모님은 나를 측은히 생각하셔서 말씀을 아끼셨다. 나는 부모님께 너무 부끄러웠다. 졸업을 하고 집에 머무는 것이 죄송했다. 나는 공사장에 쉽게 잡일을 얻었다. 공사장에서 나를 본 사람이 부모님께 말했는지 어머님은 공사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집을 떠나야 했다.
해병대 모병관은 나를 보자 궁색한 표정을 짓더니, 쿡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는 것이라곤 전투라고 했다. 그는 의아히 여기더니 보병 특기에 주저 없이 도장을 찍었다.
전쟁은 나를 깨우쳤다. 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쐈다. 적이 눈앞에서 쓰러졌다. 아이들도 피를 흘렸다. 나는 어린아이의 잘린 다리를 한 손에 쥔 채 아이를 안고 응급처치소로 달려갔다. 의무병은 다리를 숲속으로 던졌다. 군의관은 나를 의심쩍게 쳐다봤다. 나는 처음으로 생명을 생생하게 피부로 느꼈다. 나의 피 속으로 생명의 소리가 파장이 되어 번져갔다.
나는 제대 후 군에서 만난 샘의 아버지가 소유한 광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광산은 폐광 일보 전의 낙후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인부를 모으고 광산을 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땅을 팠다. 새로운 기계를 도입했다. 석탄 생산량은 수지가 날만큼 증가되었다. 새벽에 땅속 깊이 들어가서 땅거미가 질 때 갱을 나왔다. 샘과 나는 보호 안경을 벗으며 까만 석탄으로 얼룩진 얼굴을 보며 서로 깔깔 웃었다.
휴가를 얻어 집에 오니 부모님과 형제들은 반가움보다 나를 측은하게 쳐다봤다. 내 얼굴에 석탄 가루라도 덮여 있는 듯이. 부모님은 오랜만에 교회를 데리고 나가셨다. 연배 동료들이 병원의 심장외과 레지던트로, 뱅커로, 변호사로 자기를 소개했다. 그들은 나를 예전처럼 낮춰 대했다. 혹 거만을 떨기까지 했다. 나는 머리를 숙였다. 나는 석탄가루를 들이마시듯 숨이 막혔다.
집에는 식구들이 모두 TV에 모여 있었다. 웨스트버지니아 탄광이 무너졌다는 급보였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작별인사도 않은 채 나는 뛰었다. 낡은 셰볼레의 액셀러레이터를 발이 닳을 때까지 밟았다. 라디오가 잡음 속에 구조대가 발굴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라크에서 샘과 빗발처럼 나는 탄환 속에서 적진을 함께 뛰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먹칠을 한 샘의 웃는 모습이 차 앞을 가렸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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