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듣기 싫은 이야기를 남이 늘어놓으면 눈을 감고 있다가 자버리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아마 그 습관이 있는 걸로 짐작되어진다. 나는 그런 배짱은 없지만은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곧잘 잠을 잔다. 찬송가 소리에 잠을 깨면 천당 갔다 온 것 같다. 나는 어떤 모임 회의석상에서도 조는 수가 있었고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서도 조는 수가 일쑤였다. 한잠을 자다 깨어도 내용은 별로 진전이 없고 여전히 고루한 내용들이 되풀이되고 있던 세미나가 기억이 났다. 그동안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다 하여도 상관은 없었다. 나중에 자연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회사 다닐 때 몇몇 동료들과 밤새껏 화투놀이를 한 적이 있었을 때도 나는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어서 한쪽 구석에서 달콤한 잠으로 대신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는 밤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셨다면 멋있는 것 같기도 하나, 이런 향락은 자연과 인생이 주는 가지가지의 기쁨과 맞바꾸는 것이 되기에 잠에 대한 행복함을 못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잠을 못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소리도, 신선한 햇빛조차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잠을 희생하는 대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끼니를 한두 끼 굶고 웃는 얼굴을 할 수 있으나, 잠을 하루도 못 잔다면 얼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잠 못 드는 정취를 나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런 심정 이라든가 정월 대보름날 밤에 잠 못 이루고 고향 생각에 하얀 밤을 지새는 이의 심정을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밤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너 하버 주위를 왔다 갔다 하는 애인들도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잠을 방해하는 것은 욕심이 아닌가 싶다. 물욕, 권세욕, 애욕 거기에 따르는 질투 모략 이런 것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가 많다. 쌔근거리며 자는 아기, 억지 쓰다가 잠이든 개구쟁이 이런 어린 아이들의 표정은 달콤하게 자는 아름다움에서 느껴지는 것 역시 잠은 행복을 선사해주는 것으로 믿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잠은 수면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면 훨씬 짧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잠이 얼마나 달콤하고 흐뭇한 지를 생각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에는 밀레의 그림으로 농부들이 들에서 달콤한 낮잠을 자는 그림이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평온함과 행복감이 오면서 절로 잠이 오는듯해서 이 그림을 사랑하고 좋아 했는지 모르겠다. 잠자는 소녀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소년을 그린 그림도 역시 좋아한다. 왜 이 두 그림이 내 기억 속에서 남아있는지, 아마도 잠자는 모습들이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게 한다.
시계추를 멈춰놓고 잠이 들어보려고 애쓰는 사람과 팔뚝시계를 집어 던지고 잠이 들어 버리는 사람도 달콤한 행복을 안고 깊은 그곳으로 빠져들 거라 본다. 일터에 갈 시간이 다 되었어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일으키면 쓰러지고 또 일으키면 쓰러지던 그런 모습을 아직도 버릇처럼 해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나른한 봄날에 졸음과 함께 찾아오는 단잠. 잠은 괴로운 인생살이를 하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영원한 축복일 수도 있다.
홍병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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