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며생각하며
▶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오래전 내가 10살도 채 되기도 전 80의 나이로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구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지내던 암울한 시대, 그리고 해방, 6.25, 그리고 반 쪽짜리 땅이라도 자유의 대한민국의 건설 등 모든 것이 할머니에게 힘든 세월이었지만 가끔씩 눈물까지 글썽이시며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글쎄, 10년도 아니고 36년을 말이다. 내 나라 말과 글을 완전히 못쓰게 하고 일본말과 일본글만을 쓰도록 강요하고, 어길 시는 말도 마라, 헌병이 와서 잡아갔는데, 글쎄 몇 사람만 보여도, 무슨 모의하냐 고 잡혀가고, 정말 일본 사람만 사람이었지, 우리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단다.”
일제 통치하의 억울하고 슬픈 얘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래서 그때 일본 순경이 들고 다니던 몽둥이만 생각해도 끔찍하고, 한글 책은 모두 불태우고 이름마저 모두 일본이름으로 창씨개명 하도록 강요해서,억울하고 분해서… 하시면서 말씀도 끝나시기도 전에 벌써 눈물이 떨어지신다. 일본인들의 만행은 끝이 없어 도시 이름, 동네 이름을 일본말로 모두 바꾸고 농토의 착취, 재산의 강제 탈취뿐만 아니라 지난주 신문에는 의사당에서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들의 전기고문, 강간, 폭행의 증언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에이게 한다.
“반쪽나라면 어떠냐, 나중에 하나로 만들면 되지. 일본이 남의 나라 뺏어 주인 노릇하던 시절 생각하면, 내 나라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단다. 너희들 세대는 절대 어디에도 나라 뺏기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셨던 일이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월남이 전쟁으로 패망하고 공산치하로 변하고 쫓겨나올 때, 그 국민들의 참담해 하던 얼굴이 생각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나를 흥분하게 하는 추억은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여고 세계총동창회는 마침 한국에서 월드컵 경기가 거행되던 날이었다. 히딩크 이름이 하늘을 날고, 한국에서 온 동창들과 호텔방에서 새벽 3시(밤낮이 바뀌어)에 빨간 셔츠들을 입고 응원하던 그때, 중계를 보며 어디서들 기운들이 났는지, 오, 대~한민국, 대한민국 짝짝짝 필승을 외치며 한 마음이 되었다.
경기는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고, 모든 국민은 한마음 되어 선수들을 응원했다. 누군가가 “우리나라 많이 컸네” 라고 얘기한 것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나라인데 올림픽은 언제 보아도 중년 여인의 수더분한 마음 같은 게임이고, 월드컵은 마치 10대의 열기와 흥분이 넘치는 광란의 체전 같았다. 지금 인도,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글이 씌어진 셔츠들이 제일 인기 있다고 한다. 또 아시아의 어떤 나라 사람들은 한국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어느새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10번째 경제국이라고 한다. 어깨를 펴자. 외국에 나와 살아도 아침 눈뜨면 한국소식이 궁금해지는 것, 이것이 애국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나라가 있음은 축복이다. 우리 2세들에게도 긍지를 심어주고 바른 역사를 알리자.
그날 월드컵을 응원하던 젊은이들의 눈빛에서 나는 보았다.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꿈과 애국심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천지를 진동하던 그들의 함성이 폭포수처럼 하나 되어 흐르던 것을.
오! 대~한민국, 대~한민국.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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