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어린 시절 도시의 아이들에게 인간관계와 정서발달에 중요한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동네골목이다. 동네골목의 벽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였고, 공터는 운동장이었고, 골목 그 자체는 축구골대였다.
내가 동네골목에서 만난 아이들 중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잘하는 광수가 있었다. 그 광수는 형 인수가 있었고, 동생 의수가 있었다. 의리의 삼형제가 되어 늘 나에게 위협적이었다. 어느 한순간에 구슬치기를 하다가 광수가 조금 잃으면 형 인수에게 달려가 도움을 구한다. 그러면 형 인수는 바로 구슬치기 판으로 뛰어든다. 다섯 살 난 막내 동생 의수는 큰 형 바로 뒤에 사탕을 물고 쫓아와 쭈그리고 앉는다. 그러면 결국 나와 삼형제의 한판 대결이 되는 것이다. 나는 수에 밀려 구슬치기를 하면 늘 잃게 되는 서러움을 겪었다.
또 다른 아이는 선경이라는 예쁜 아이다. 엄마와 여동생과 같이 살았는데 그 동네골목에서 놀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고 얼굴이 깨끗하고 착했다. 어느 날 단방구 놀이를 하는데 술래가 잡으려고 달려오는데 선경이가 잘 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엉겁결에 선경이의 손을 덥석 잡고 20m 정도의 거리를 마치 영화 속에서 동반 도주하는 식으로 무조건 뛰었다. 술래는 우리를 잡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나게 되었다. 그 때 처음 선경이의 얼굴에서 만족한 웃음을 보았다.
동네골목에서 잘 사는 사람은 특별히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은순 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버지, 언니 둘, 오빠,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살았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었다. 아버지가 일하러 가시면 특별히 부엌에서 해 놓은 것이 없어서 자기들이 먹을 것을 해 먹었다. 그 아이는 부끄러움도 없었지만 인정이 많았다. 자기가 집에서 만든 떡이라고 하면서 가지고 나와서 동네아이들에게 서로 나누어 주었다.
어른이 되어서 미국에 살기에 한국 같은 동네골목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 모두가 동네골목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정한 사람들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만난 동네아이들, 의리의 광수형제들, 예쁜 선경이, 인정 많은 은순이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이 잘나서 멋있기보다는 평범하게 살지만 사람다운 냄새와 인정이 있어 그것이 멋있는 것이다. 시기, 경쟁, 분주함, 고독, 격려, 사랑, 이 모든 것들이 버릴 것 없이 우리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민자의 삶은 도시의 동네골목과 같은 것이다. 작은 곳이지만 아름다움과 사랑과 행복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다. 서로 나누면 기쁘지만 서로 경쟁하면 아픔과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풍요로운 부자가 없으며, 초라한 빈자도 없다. 알고 보면 모두 부자고, 생각해 보면 다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아주 부자도 없고, 진짜 가난한 자도 없게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이민 동네골목이다.
삶은 아주 평범한 것이고, 소박한 것이다. 삶은 나누는 것이지 숨기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 함께 하면 아주 작고 작은 행복한 동네골목이 되는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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