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수련의 종교다. 그 의지의 표현이 삭발이며 출가이다. 그냥 평상의 삶을 이어가며 불교를 실천하기에는 부족하여 출가하고 삭발을 하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의 단련을 통해 종교를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나 치열한 수련의 종교인지는 아마도 스님의 입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인간 최후의 순간에서도 자기의 의지에 의해 앉아서 죽음을 맞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큰 결단이 없이는 이루기가 어려운 종교이다.
거기에 비해 기독교는 큰 결단이나 변화가 없이 일상 속에서 실천해가는 종교다. 그래서 쉬운 종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만 일주일에 한번 종교를 실천하는 겉만 종교인인 경우가 많다. 일주일 내내 일상 속에서 일상의 논리대로만 살다가 일요일 하루 교회에 가서 ‘거룩한 주일’을 지키기 위해 온갖 위선을 다 부려야 한다. 엄숙한 복장을 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회개의 기도를 하며 일주일에 한번 찬송가를 부른다.
일상에서 실천되지 않는 거대한 뜻이 일요일 하루 기도하고 봉사했다고 실천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종교인은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종교인을 말할 것이다.
일주일에 짜장면 한그릇 먹었다고 짜장면을 주식이라고 부를수 없다. 날마다 먹는 쌀밥이 우리의 주식인 것이다. 일요일 한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는 기독교는 그래서 가식의 종교라는 느낌이 짙다. 차라리 엄숙한 목소리로 기도하기 보다는 날마다 밥을 먹을 때 고개 숙여 기도하듯 평상시대로 하는 기도가 가장 어울릴 것이다. 거대한 믿음을 실천할 듯 얘기하는 것보다 그냥 날마다 우리 삶속에서 실천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성령이 임하라고 통성 기도를 할 때면 영 어색하기만하다. 왜 하필 일요일 교회에만 오면 성령이 임해야 하는가? 성령이 임하려면 날마다 임해야지. 왜 통성을 해야만 성령이 임해야 하는가? 묵상을 해도 성령이 임해야지. 일요일 하루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나머지 날에 만나는 사람들은 평상시대로 대한다면 위선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주님은 “주여, 주여” 하며 가식된 기도 하지 말라고 주기도문을 주신 것이다. 쉽게 기도하라고.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와서 온갖 세상의 좋은 일 다 실천하고 성자처럼 살듯 기도하지 말라고.
주기도문은 얼마나 간결하고 아름다운 기도인가? 날마다 백번을 해도 질리지 않을 “감사 합니다” 라는 기도. 날마다 백번을 실행해도 지나치지 않을 용서라는 행위. 이처럼 간단한 기도와 간단한 행위를 일요일 한번이 아니라 날마다 행하고 기도할 때 우리는 평범하면서도 진실된 종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목사님이 되지 않아도 “감사합니다”라고 아름다운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서 선교하지 않아도 가까운 이웃에게 아름다운 용서를 행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센터빌 윤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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