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현재를 위해 대부분 살아갑니다. 즉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또는 더 좋은 잠자리를 위해 집을 갖고자 돈을 모읍니다.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등이 모두 현실적인 이유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살아가는 나날의 종착역인 죽음을 흔히 잊고 사는 수가 많습니다. 열심히 현실을 위해 살아가다가 어느 날 찾아온 종착역은 그야말로 그 현실의 끝을 의미하며 또한 그 모든 현실이 의미를 잃게 되는 순간입니다. 물론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 때 찾아올지도 모를 그날을 위해 생각할 겨를조차도 없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 주위의 가까운 형제나 친척 또는 친구가 죽게 되면 그 종착역이 새삼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자신의 얘기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삶의 목표를 현재 대신 그 마지막 날을 위해 살아가는 것으로 정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현재 먹는 밥이 문제가 아니고, 현재 사는 집이 문제가 아니고, 현재 모는 차가 문제가 아니고 그 마지막,날의 모습을 위해 살아가는,것은 어떨까요.
위대한 종교는 대체로 이 마지막 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는 죽음 후 다시 부활하여 영생을 얻었고, 석가는 죽음의 인연을 끊어 열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인 거대한 진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일상에서 마지막 날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봅니다.
그날에 나의 방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길 바란다던가, 그날에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아름답기를 바란다던가 하는 소박한 소원은 어떨까요? 또는 그보다 약간은 사치스런 소원이라면 아내가 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날을 맞는다던가 자식들이 그날도 아빠를 엄청 좋아하면 좋겠다는 소원은 어떨까요? 또는 그날에 차가운 겨울날씨나 무더운 여름이 아닌 산산한 가을 날씨 또는 따스한 봄날씨면 좋겠다고 소원해 봅니다.
그러나 그런 어떤 소원보다도 귀중한 나의 그날의 소원은 아름다운 꽃처럼 스러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치 마라톤을 달리는 운동선수가 온갖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골인 지점에 다다랐을 때처럼 최선을 다한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두 다리를 길게 내리뻗고 편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행복의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병들어 온갖 고통의 나날 속에 찡그린 얼굴을 하다가 그날을 맞기 보다는 꽃잎이 봄 햇살 맞듯이 웃으면서 그날을 맞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까요?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온갖 약물과 첨단 의료 기계에 매달린 채로 그날을 맞는 것보다 이 땅에 처음 왔던 그날의 기쁨처럼 또 다른 세상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그날을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꿈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아름다운 그날의 내 모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돈을 벌어 좋은 집을 사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그날의 내 모습을 위해 노력합니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의 모습으로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그런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윤진영/센터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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