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떠난 이름이여/ 다시 오지 못할 그대여/ 왜적에 사무친 한을 어찌하여 풀지 못한 채/ 말없이 떠나간 넋이여/ 어찌 잊고 가십니까/ 그리도 우렁차던 무궁화꽃 노래를/ 어이 잊고 가십니까
정신대, 군 위안부라는 낙인이 찍히어 평생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김윤심 할머니의 시이다. 1997년 11월 김학순 할머니의 영구차 뒤를 따라가면서 애통해하며, 연약한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우리네 인생이라 생각하며 가슴에 새긴 시이다. 연초, 2월 8일에는 강덕경 할머니가 세상과 하직을 하시더니,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120여 정신대 할머니들 가운데 가장 먼저(1991년 8월 14일)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었음을 공포한 김학순 할머니마저 세상과 하직을 하신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고무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왔었고 우리들은 고무줄넘기를 멈추고 자동차 곁으로 몰려가 여기저기 만져보고 있는데 차 안에 있던 순경과 군인이 자동차를 태워주겠다며 타라고 하였다. 이 한순간이 평생의 한을 남기는 순간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발을 동동 구르며 내려달라 사정을 해보지만 차는 이미 마을 앞 고갯길을 넘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을 뿐 내려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윤심 할머니는 그렇게 끌려가며 셋째 오빠가 만들어준 자전거 튜브로 된 줄넘기 고무줄을 손에 꼭 쥐어본다.
열네 살의 소녀는 소변마저 자동차 바닥에 누어가며 끌려가서 열차를 탔고, 또 배로 갈아타고서 어딘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채 밤 낮 없이 달리기만 했다.
도착한 첫날 밤 주먹밥 한 덩이에 미숫가루 한 그릇이 나왔다. 손이 통통 붓도록 움켜쥐었던 고무줄도 빼앗겼다. 마치 오빠를 빼앗긴 것처럼 허망하고 허전 했다.
다음날 아침도 주먹밥 한 덩이를 먹고 나니 군인 한명이 와 나를 태우고 1시간 쯤 가더니 원피스를 사주고, 자장면도 사주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자장면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여관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 군인은 호랑이 같이 변했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일주일 뒤 나는 그 군인의 차를 타고 천막으로 돌아왔다. 이미 온몸이 아파 견딜 수 없었는데, 그날 밤부터는 군인들이 줄을 지었다… 앉지도 걷지도 못했고 화장실에도 기어서 다녔다. 그러나 그 악랄한 군인놈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비가 세차게 몰아치던 어느 날밤 죽기를 각오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고향으로 가야한다. 엄마 곁으로 가야한다. 집으로. 집으로 향한 마음하나 붙들고 달린다. 빗속을 뚫고 달린다. 도살장 같은 천막을 벗어나 무작정 달린다. 비에 젖은 진흙땅이 발목까지 빠져도 달린다.
나는 지금 헌병대에 끌려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조센징은 죽여도 아무 탈 없다며 주전자의 물을 코에 쏟아 붓고,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운 뒤 구둣발로 짓밟았고, 펜촉으로 온몸을 찌르며 간첩이 아니냐고 닦달 한다. 아물아물 엄마 얼굴이 떠오르고, 줄넘기 고무줄을 만들어 주던 오빠 얼굴이 떠오르고, 또 같은 처지의 동료가 아이를 낳았을 때 간호원이 아이를 자루에 넣어 가지고 갈 때 자루 속에서 아기가 캑캑거리던 소리도 들려온다. 만신창이가 된 몸에 첫 달거리가 찾아왔을 때 놀라 소리지르는 나를 보며 깔깔대던 동료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나는 국민들에게 호소문을 썼다. 그리고 탑골공원 앞에서 온 국민이 듣도록 큰 소리로 낭독했다. 일본 정부는 하루 빨리 자기네 국가가 저지른 범죄를 시인하고 우리 한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김윤심 할머니의 수기 중에서
필자가 소장 중인 자료들 중에서 알아야 될 사항들만을 골라 공지함으로써 가슴 저미는 과거의 한 페이지를 돌아보며, 꺾이고 짓밟힌 삶 속에 허덕이시는 할머니들에게 우리들 간절한 위로의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번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모두의 마음과 정성을 합쳐달라고 호소합니다.
이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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