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주위에서 1.5세나 2세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들 걱정을 하면, 얼굴은 한국 사람이지만 언어와 생각은 미국 사람으로 살아온, 우리들보다 더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을 안타까워한다. 온전히 한국인도 또 미국인도 아닌 상태에서 우리와 달리 항상 어느 쪽에 서야 하나 혼동을 느끼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버지니아텍에서 32명의 아직 피지도 못한 꽃송이 같은 학생들과 교수들을 무자비하게 쏘고 자기 목숨마저 포기한 조승희 사건은 모든 사람을 충격에 떨게 했고,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이리 가슴이 아픈 건 단순히 한국 아이라는 사실보다도 그동안 모두 살아온 힘든 시간들, 부모들이 그 많은 공을 들여 살아온 내 아이들의 고통이 함께 겹쳐졌기 때문이고 가슴 한 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많은 미국사람들이 어느 인종이라도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위로를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가게도 가기 싫고 밥맛도 없다고 했다. 지금 많은 피해자들이 아직도 부상으로 병원에서 고생하고 있으며, 또 사망자들의 유가족들이 겪고 있을 아픔은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그러나 조승희의 누나가 얘기했듯이 조승희 식구들은 지금 희망이 사라진 어둠속, 악몽과 고통의 터널에서 갈 길을 잊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일로 우리 부모들은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힘을 합쳐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약사로,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 내 의견을 내본다.
첫째는 정신병은 두뇌 질환이므로 전문인의 치료를 받고 필요시 약물을 복용하면 정상인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정신병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오랫동안의 관습에서 헤어나 정신과에 가는 것이 수치가 아님을 알고 치료에 나서야 한다. 얼마나 많은 미국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관계되는 약을 복용 하며 정상생활을 하는지 알면 정말 놀랄 것이다. 정신병은 어떤 천벌도, 죄의 대가도 아닌 하나의 질병이며 주위 가족이나 친구, 또한 사회의 도움을 항상 필요로 하는 병일뿐이다.
둘째는 아이들은 항상 가족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래 전 한국아이를 입양한 미국 엄마가 울면서 걱정을 털어놓았다. 입양한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엄마가 친 딸인 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한 탓인지, 성적은 떨어지고 심지어는 학교 교실에서 오줌까지 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는 학교에서 오거든 잘 갔다 왔느냐고 말만 하지 말고 안아주고 팔도 만져주고 포옹도 해주어 엄마 피부를 느끼게 해주라는 처벙전을 주었다. 그랬더니 이후 놀랍게도 그 애가 명랑해져서 성적도 많이 올라갔고 다시는 오줌 싸는 일이 없다고 그 애 엄마가 기뻐하며 전해주던 일이 기억난다.
보고 싶었다든가, 사랑한다는 말을 되도록 많이 해주어야겠다. 거기에 더해서 살다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자신을 컨트롤하는 법을 가르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마음을 길러주며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야겠다.
셋째는 어려서 부터 친구를 많이 갖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쳐야겠다. 돈 몇 푼 더 벌려고 하지 말고 좋은 친구를 얻으라고 친구의 중요성을 얘기해주라. 만일 조승희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번 일로 아이들이 대학생이라고 다 컸다고 언제라도 마음 놓을 일이 아닌 것을 새삼 알았다. 그래서 옛말에 자식은 내가 살아있는 한 평생을 이고 가야 하는 달콤한, 그러나 무거운 설탕 보따리라 했던가.
삶이란 때로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절대자가 정해놓은 수순을 밟아가기도 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용서하며 자식을 잘못 키운 안타까운 한 부모의 심정으로 머리를 낮추고 목소리도 줄이며 살아가야겠다.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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