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는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 많은 나라가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가리킨다.
중국의 한 전통학문의 대가는 이 시기를 중국사에서 ‘가장 몰염치한 시대’로 꼽는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세워졌다가 무너진다. 어제의 신하가 오늘의 임금이 된다. 어제의 임금이 폭정의 괴수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이처럼 무도하고 혼란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그러니까 5대 10국에서 5조(朝) 8성(姓) 11군(君)을 섬기며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정치인이 있다. 풍도(馮道)란 인물이다. 여러 왕조를 섬기면서 재상을 포함해 고위관리로 지낸 기간만 무려 40년이 넘는다.
이런 그가 후한(後漢)의 재상으로 있을 때 일종의 자서전을 썼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력을 낱낱이 밝히면서 역임한 관직과 칭호를 득의양양하게 나열했다. 심지어 거란정권이 준 허위 관직까지 포함해서.
최악의 난세였다. 그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면서 그토록 오랫동안 정치적 운을 지킬 수 있었을까. 아부와 오직 권력만 쫓은 철저한 기회주의적 처신이 그 답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후당(後唐)의 명종이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그의 아들 이종후가 이었다. 이 새 황제가 즉위한지 4개월도 채 안 된 무렵 종실인 이종가가 난을 일으켜 도읍으로 쳐들어왔다.
세인의 눈은 풍도에게 쏠렸다. 명종의 은덕을 입어 미천한 처지에서 재상으로 기용된 그였다. 당연히 명종의 아들인 새 황제를 도울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백관을 거느리고 나가 이종가를 영접한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이종가는 석경당과 불화를 일으킨다. 석경당은 거란의 도움을 통해 이종가를 격파한다. 이 석경당은 중국 사상 가장 악명 높은 황제가 된다.
풍도는 석경당 밑에서도 건재를 과시한다. 아니, 그보다 한 술 더 떠 거란 황제에 아부해 조정을 위협할 정도의 위세를 부린다.
송대의 구양수는 ‘신오대사’를 통해 이런 그를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열린 우리당 탈당파들의 몸놀림이 빨라지고 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는 식이다. 그런 과정에서도 눈에 띄는 게 있다. ‘정운찬 총장 모시기’에 대한 여전한 집착이다.
왜 그토록 집착인가. 속내야 뻔하다. 흥행이 되는 간판주자가 있어야 기득권이 보장된다는…. 새 황제 옹립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정치인의 의리란 새털보다 가볍다’-. 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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