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암살을 계획하고 있는 거사팀. 케빈 맥날리(왼쪽부터), 크리스티안 베르켈, 빌 나이, 탐 크루즈, 테렌스 스탬프, 데이빗 스코필드, 케네스 브라나.
히틀러 역의 데이빗 뱀버.
베벨광장서 느낀‘그때 그사건’
“유대인 감독이 독일측 입장으로
히틀러 영화 찍으니 감개가 무량”
리셉션장 탐 크루즈 시종 부동자세
1944년7월20일에 일어난 히틀러 암살시도를 스릴러로 만드는 UA작 ‘발키리’(Valkyrie-내년 8월 개봉)의 촬영 현장 방문차 최근 베를린을 다녀왔다. 제목은 암살 작전명으로 히틀러 폭탄암살시도를 시행한 독일군 대령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로는 UA의 공동사장인 탐 크루즈가 나온다.
베를린에 도착한 날 저녁 훔볼트대를 마주한 호텔 드 롬 4층 옥외 테라스에서 크루즈를 비롯한 출연진과 브라이언 싱어감독 및 각본을 쓴 크리스 맥쿼리 등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들과의 상견례 리셉션이 열렸다. 호텔 앞 광장은 1933년 5월10일 히틀러가 훔볼트대가 소장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저서들을 분서한 베벨 광장으로 테라스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면서 역사의 재현감을 느꼈다.
단정한 차림에 깔끔한 모습을 한 크루즈는 “독일군 장교 제복을 입으니 이상한 기분이더라. 각본을 읽기 전에는 독일인들의 저항운동을 잘 몰랐다”면서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서있는 내게 “당신은 그걸 알았냐”고 물었다. 난 제임스 메이슨이 롬멜 장군으로 나온 영화 ‘사막의 여우’에서 암살시도 내용을 본 바 있어 “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크루즈는 이에 자기도 영화를 봤다면서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과 구성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크루즈는 이어 “정말 훌륭한 얘기로 연기를 하면서 손에 땀이 나는 강렬한 느낌을 경험했다”면서 “역에 충실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대를 쓰고 연기한 경험에 대해 “여러 번 연습을 했는데도 어지러웠다”고 알려줬다.
크루즈는 시종일관 부동자세로 낮은 음성이나 진지하게 영화에 대해 설명했는데 독일서 사교 취급을 받는 그의 종교 사이언톨로지에 관한 질문에는 “영화 얘기만 하고 싶다.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친절하다”고 답을 대신했다.
이어 우리는 히틀러 암살시도 주모자들인 독일군 장성역의 빌 나이와 에디 이자드 그리고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아내 니나로 나오는 카리스 반 후텐과 히틀러역의 데이빗 뱀버 등과 대화를 나눴다. 반 후텐은 지난해에 개봉된 홀랜드 영화 ‘검은 노트북’(Black Book)에서 나치스에 저항하는 요원으로 나와 열연, 이에 감동한 크루즈가 자기 아내 역으로 골랐다. 반 후텐은 “크루즈는 매우 겸손하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며 “왜 미국 사람들이 그를 비방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배우들은 모두 크루즈를 훌륭한 사람이자 배우라고 칭찬을 했다. 뱀버는 “53세에 54세였던 히틀러 역을 맡게 됐다”면서 “역을 위해 히틀러의 가족용 영화와 알렉 기네스와 앤소니 합킨스 등이 히틀러로 나온 영화들을 봤다”고 말했다.
싱어 감독은 “나는 유대인이어서 유대인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서 “내가 독일 측 입장으로 히틀러 영화를 찍다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웃었다. 멕쿼리는 이 영화를 위해 생존한 폰 슈타우펜베르크 가족을 만났다. 그는 “가족은 폰 슈타우펜베르크를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기억하고 싶어하더라”면서 “가족은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시도 동기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을 못 마땅하게 여겨 혹시 영화가 그를 그릇되게 표현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리셉션 이튿날 우리는 베를린 교외 질렌도르프에 있는 항케빌라의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이 집은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날 찍은 장면은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부상치료 후 처음 집에 돌아와 가족과 만나는 장면. 크루즈와 반 후텐이 두 어린 아들이 바그너의 오페라 ‘링’에 나오는 ‘발키리의 비행’을 틀어놓고 칼싸움 장난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을 모니터로 감상했다. 이어 우리는 역사적인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에 들러 건설 중인 전쟁성 건물 내부와 히틀러의 지휘본부였던 ‘늑대의 잠자리’ 세트를 둘러봤다.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거사’전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1907년 남독 뮌헨에서 서쪽으로 90km 떨어진 예팅겐에서 가톨릭신도인 귀족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한때 음악과 건축에 전념할 생각을 하다가 1926년 가족의 전통에 따라 밤베르크의 제17 기병연대에 입대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26세 때 역시 남독 귀족가문의 니나 폰 레르헨펠드와 결혼해 3남2녀를 두었다. 막내딸은 폰 슈타우펜베르크 처형 후 태어났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처음에는 나치스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또는 중립적 입장을 취했는데 나치스의 과격성을 깨닫고 생각을 바꿨다.
나치스에 대한 저항운동은 1936년부터 라이프치히시를 중심으로 움트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여기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이 해 베를린의 육군 참모대학에 입교, 2년 후 역시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위가 됐다.
군의 나치저항 주요 인물은 히틀러의 전쟁준비에 반발, 육참 총장직을 사임한 루드빅 벡 중장. 그의 지휘로 몇 차례 쿠데타가 계획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한편 나치스의 유대인 학대가 강화되자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자신의 정권에 대한 남아있는 지지를 버리고 히틀러 암살을 통한 정권 전복을 생각하게 된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기갑장교로 폴란드, 프랑스, 러시아 및 북아프리카 전투에 참전했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뒤 히틀러가 광인임을 확신하고 히틀러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1943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히틀러가 레닌그라드에서 소련군에 포위된 독일군의 탈출을 거부한데 환멸을 느끼고 북아프리카 전출을 요청, 롬멜 휘하 기갑사단에 배치된다. 4월7일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튜니지아 사막에서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왼쪽 눈과 오른쪽 팔 그리고 왼손의 4번째와 5번째 손가락을 잃었다. 뮌헨의 병원서 3개월간 치료를 받을 때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자신을 히틀러 제거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1943년 10월 베를린의 육군본부 소속 참모장으로 임명된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벡과 접촉하면서 히틀러 암살을 계획했다. 계획에 따르면 히틀러 사후 군 동조자들에 의한 쿠데타를 일으켜 게슈타포와 SS를 무력화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것. 이 계획에는 에르빈 폰 비츠레벤 원수와 22명의 장군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자살폭탄에 의한 히틀러 암살을 몇 차례 시도하나 모두 무산됐다.
1944년 대령이 된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직책인 예비군 관련 참모장에 임명된다. 부상 때문에 몸수색을 안 받고도 히틀러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이 직접 폭탄을 장치, 히틀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두 차례의 암살시도 실패 후 1944년 7월20일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동프러시아 라스텐부르크 인근의 히틀러 지휘본부인 ‘늑대의 잠자리’ 내 브리핑 룸에 들어가 폭탄이 장치된 가방을 히틀러와 참모들이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테이블 밑에 놓고 방을 빠져나왔다. 하오 12시42분 폭탄이 터지면서 11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히틀러는 고막과 몸 왼쪽 그리고 다리에 부상만 입는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가 죽은 것으로 알고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히틀러의 사망이 확인 안 되면서 거사팀은 마음이 흔들렸고 히틀러의 생존 소식과 함께 쿠데타는 무산됐다. 그리고 체포된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21일 새벽 0시30분 다른 동조자 4명과 함께 육군성 건물 내 마당에서 총살됐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독일에서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는데 그가 처형된 전 전쟁성 건물 앞길은 슈타우펜베르크 슈트라세(스트릿)로 개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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