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은호(전 코리안 콘서트 소사이어티 회장)
나그네가 서울서 맞이하는 초가을의 새벽은 가랑비가 옷깃을 적시며 보슬보슬 내리는 시적인 낭만적 날씨였다. 상쾌하고 아름다운 청명한 가을 아침이었다. 나는 관악산 기슭에 위치한 숙소인 서울대학 호암 교수회관을 새벽 일찍 출발하여 전등사가 위치한 강화의 한 마을인 나의 고향을 탐방하고자 지하철을 탔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그러한지 이른 아침인데도 소풍이나 등산 차림의 사람들로 차안은 붐볐다.
지하철이 지하에서 올라와 한강 강변을 달릴 때 눈앞에 전개되는 즐비한 고층건물의 아파트을 보면서 나는 70년 전 중학교 다닐 때 한강에서 여름에는 수영, 그리고 추운 겨울에는 스케이트 타던 옛날을 상기하며 이렇게도 변화 발전한 오늘의 한국을 연결 생각하며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뜻 아니게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이라고 쓴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전에도 양화진에 대한 관심이 항상 있었는데 방문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옳거니 하고 즉각 다음 전철역인 ‘합정’에서 하차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가는 길을 묻고 헤매며 이리저리 다니다 약 30분 후에 겨우 찾은 곳은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첫 성인이신 김대건 신부의 동상 등이 건립되어 조화를 이루며 잘 조경 된 ‘절두산 순교공원’이었다. 순교자들의 머리를 잘랐던 동산 이라는 데서 유래한 절두산 명칭이다. 공원 경내는 상당히 넓으며 잘 정리되어 있어 소음과 혼잡으로 시달리는 서울 시민에게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휴식과 안식의 공간 이 되겠다. 며칠 전 신문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부인과 더불어 대선후보의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며 쉬는 듯 이곳에서 산책하는 사진을 보았다.
바로 도로 건너편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었다. 묘원 앞에는 교회가 있었는데 주일날이어서 교인들이 모이고 있었다. 혹시 아펜셀러 박사나 스크렌튼 부인의 묘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전연 모를 뿐 아니라 무슨 분들이냐 하는 듯 날을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놀라고 실망하였다. 우리 한국에 처음으로 현대 교육을 도입, 학교을 창설하며 선교활동을 시작한 분들이며 오늘의 한국을 이룩하게 한 한국의 은인들인데 말이다. 그것도 교회 바로 옆에 묘지가 있는데도 모르다니 관심도 없는 듯 참으로 한심한 교인들이라고 느꼈다.
나의 모교 배재학당을 세우신 아펜셀러 박사와 이화학당을 세우신 스크렌튼 부인의 묘비석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쉽게 찾았다. 두 분 묘 앞에서 묵도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절로 흘려 나왔다. 묘지에는 나도 잘 알고 모시던 여러 선교사님의 묘를 보고 다시금 한국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며 봉사와 희생을 감수한 선교사님들께 감사하였다. 그 외에 많은 분들의 묘가 있었다.
오늘의 우리 한국은 유사 이래 모든 면에서 크게 변화 발전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세계 10여 위 내외 된지 오래다. 세계적으로 최고 최신 첨단 산업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어려웠던 춘궁기 보리고개는 벌써 오래전 사라지고 오히려 궁중요리가 일반 평민 가정의 식탁에 오르도록 변화하고 잘산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우리의 노력과 근면성, 높은 지식을 가진 인적 자원 등 많은 요인이 복합 작용하여 이루어지었다고 본다. 그런데 생각하여보면 오늘의 우리 한국과 우리를 있게 한 역사적 사실이고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미개하고 봉건에 억눌린 우리에게 신문명과 아울러 기독교의 실상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보여준 선교사들과 순교자들의 봉사와 희생 없이는 이루지기 어려웠음은 명약 분명하다.
한강 성산대교 근처에 위치한 양화진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한국의 숨은 은인들을 기리는 성지로 우리 모두가 감사와 사랑을 품고 찾아 마땅한 곳이다. 다음 서울 방문 시는 누구든 이 두 곳을 방문 스케줄에 꼭 넣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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