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건강한 노년을 위해 일일일식(一日一食) 위주이기 때문에 점심 식사는 참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일 년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 1회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단골집이 있다. 베데스다 위스콘신 애비뉴 선상에 있는 산뜻한 일식집이다. 주인과는 10년이 넘는 지기이고 줄 서 있는 스시맨 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이다. 스시 바 옆 항상 내가 앉는 자리 옆에는 일본 명석 해협(明石 海峽) 서스펜션 브리지 개통기념으로 만들어져 배부된 듯 클레이로 길게 만들어져 목에 검은 줄이 달린 문어단지가 있다. 계절 따라 단순하고도 우아한 꽃꽂이를 볼 때 마다 가끔씩 나의 뇌리 속 한 구석에 깊이 투각된 유년시절이 되살아난다.
내가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한 학기까지 살았던 곳은 해변이 아주 가까운 작은 마을이었다. 바다 릴 낚시에 취미가 많으신 아버님이 작은 배에 문어단지 10개를 싣고 노 저어 가다가 적당한 바다 깊이의 해저에 문어단지를 드리우곤 했다. 하룻밤 지샌 다음 날, 외동딸인 나를 데리고 그 곳에 가보면 바보 같은 문어들이 이 단지, 저 단지에 들어 앉아 있다. 옛말 시골 마을 우물에 양철로 만들어진 오래된 두레박 올리듯 바닷물을 줄줄 흘리며 문어단지 건져 올리시는 아버님을 쳐다보며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곳이어서 썰물 때면 이모님 따라 나가 대담하게도 맨 발로 뻘밭을 걸어가노라면 발끝에 밟히는 조개가 내밀었던 혀 얼른 집어넣고 입을 닫는다. 크기도 색깔도 제 각각인 게 들은 집 찾아 가느라 바쁘고 삶은 달걀 같은 예쁜 머리통 내밀고 따뜻한 오수를 즐기던 쭈꾸미들도 잽싸게 구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줄행랑친 쭈꾸미들은 아직은 남아 있는 바닷물의 포말과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약간 함몰된 모래 흔적을 남기니 어른 손에 별 수 없이 끌려 올라와야 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고동과 바위 밑에 힘차게 달라붙어 있던 쫄깃쫄깃한 맛의 떡 고동 등등… 굴 따는 어른들을 따라 나도 할 수 있다고 나섰다. 나무를 물새부리같이 길고 뾰족하게, 끝이 약간 안으로 구부러지게 만들어진 굴 따는 기구. 어른용이어서 나에겐 벅찼으나 나무 손잡이 놓칠 새라 힘껏 두 손으로 잡고 바위에 붙어 있는 굴, 요령 없이 찍어 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내가 찍어 올린 굴은 모두 뭉개져서 먹을 수가 없었다.
굴 따는 기구 어른에게 빼앗기고 밀물 때까지 간조선(干潮線)따라 아련히 시선을 돌리면 갯벌에 크고 작은 바위가 마치 설치작품처럼 운치 있다. 바다 주위를 맴돌다 바닷물을 들여다본다. 말미잘이 보인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프리마돈나 카르멘의 고혹적이고 요염한 긴 머리에 꽂힌 동백꽃처럼 말미잘의 그 하늘거림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바닷물 속에서 햇빛 받은 촉수를 자유자재로 사방팔방으로 하늘거릴 때면 그 환상적인 색상과 자태가 천상의 무희를 연상시킨다. 말미잘에는 96개나 되는 촉수가 있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내부에 독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인간세계에서도 말미잘처럼 겉으로는 아름답고 선한 척 하면서 뒤로는 이 촉수 저 촉수 환상적으로 내밀면서 독을 내 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또 일게 모르게 남에게 크고 작은 독을 뿜어내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자아중심적인 사고를 넘어 자신만 아는 극단의 이기주의와 몰염치, 양심 불량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현대인의 정신질환이 심해지고 사회가 황폐해지는 것 같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과 양심, 그리고 따뜻하게 뛰는 심장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 우리 모두가 잘 살면서 행복해지는 공동선의 추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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