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눈이 부셨다. 햇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큰 창을 통해 강렬하게 식당의 흰 벽에 아지랑이로 수를 놓고 있었다. 조반이 끝난 식당에는 손님이 싹 빠져나간 뒤라 흰 테이블과 초록색 의자들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존 덴버의 “로키 산은 높아요” 라는 노래가 산울림처럼 식당에 은은히 울려 퍼진다. 차는 눈을 감았다. 시골 서산의 집과 나무숲, 그리고 새소리를 생각했다. 이맘때면 고드름이 얼어붙어 처마 끝에 달리고 나무마다 어름이 맺힌 겨울나라. 그리운 고향이 그림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차가 메트로 호텔에 연수차 온지 만 6개월이 된다. 차가 생각하기에도 스스로 놀랄 지경이다. 시골 두메산골에서부터 서울 간이음식점, 내자동 미군 식당을 거쳐 조선 호텔에 이르기까지, 접시를 닦으며, 라면을 끓이고, 스테이크를 굽고 요리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미국 호텔 식당 주방 및 관리 과정은 차에게는 엄청난 생애의 선물이다. 차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아도 깍듯이 머리를 굽혀 인사하기를 잊지 않았다. 차는 행복해 했다. 그 옛날 발로 차이고 더러운 접시로 얻어맞던 생각을 하면서.
함께 온 동료들이 시간만 나면 미국구경을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그는 휴일에도 호텔 주방으로 갔다. 주방장이 오기 전에 깨끗이 요리도구를 닦고 윤이 나게 손질했다. 주방장은 그래도 요리를 가르치기는커녕 귀찮아했다. 손님들도 그를 마다하고 미국 웨이터를 불렀다.
차는 요리를 예술 창작이라고 생각했다. 미각은 시각이 앞서야 한다고 늘생각했다. 급히 쏟아져 나오는 요리접시 공간에 각종 채소로 꽃을 만들고 장식을 했다. 주방장은 자기 요리 위에 허락 없이 채소를 얹는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좋아서 사진을 찍어 갔다. 차는 창작을 그치지 않았다.
연말에 휴가를 낸 종업원들 때문에 연수를 온 차까지 밤새도록 요리를 날랐다. 그의 다리는 떨렸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점잖은 손님까지도 음식이 늦다고 불평을 했다. 차는 무겁게 덮여오는 눈꺼풀을 손으로 올렸다. 한국에서나 다름없이 소님들은 음식을 시켜놓은 채 자리를 떴다. 일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온 그는 옷을 입은 채로 떨어졌다. 깊은 꿈속에서도 그는 꽃을 만들었다.
전화벨이 한참 울려서야 차는 잠에서 깼다. 매니저가 따뜻한 목소리로 옷을 잘 입고 나오라고 부탁을 했다. 차는 구겨진 양복을 벗어 다렸다. 그리고 새 와이셔츠를 입었다. 너무 시간이 늦었구나, 송구한 마음이 들어서 호텔 로비로 급히 뛰어갔다. 플래쉬가 켜지며 몇 명의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호텔의 회장도 눈에 띄었다. 만면에 미소를 띈 회장이 손을 내밀고 그에게 감사장과 얼마인지 모를 수표를 건네 주웠다. 로비에는 ‘아름답고 맛있는 요리는 메트로에서’ 라는 현수막과 차의 웃고 있는 얼굴이 담겨있었다.
양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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