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인기는 불과 같다. 불을 피울 때는 쉽게 볼 수 있으나 꺼져가는 불은 아쉬움만 남긴다. 서울 거리에 기원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옛날에 찾던 기원들은 흔적도 없다. 인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어보니 ‘밥그릇 싸움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늙은 노인들만의 전리품이 되어 기득권과 텃세로 수입 확보의 폐습에 몰락했다고들 한다. 한 유단자는 “한국 바둑의 위기라기보다 재앙이 다가오는 위협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 바둑은 세계 패권을 장악한지 오래다. 바둑을 도(道)로 숭앙하는 일본을 꺾었고, 5,000년 역사를 자부하는 중국도 돌을 던지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마침내 한국에는 바둑이 ‘스포츠’가 되어 대학의 교과목으로 설정되고 인터넷과 TV의 정규 프로그램이 되었다. 청소년·소녀의 환상적인 희망 분야로 대두되었고, 청룡왕전의 중계는 일간 신문의 톱기사로 취급되었다. 백발 성성한 어르신들에서 10여 살의 어린이들까지 신(神)과 묘기를 겨루는 예술과 철학으로 헛기침 소리와 착점 소리가 한인사회의 자존심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바둑은 선비문화다. 숱한 천재들이 무궁무진한 묘수에 철학과 예술성을 불붙여 왔다. TV나 인터넷은 상금과 정상 쟁탈에 흥분했다. 사실 자유롭게 집을 차지하는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씩 얽혀서 착점이 361개뿐이지만 무한한 묘수와 천리 앞을 보는 안목은 경이롭다.
아쉬운 일은 승패가 끝나고 나면 고개만 푹 숙이고 헤어지는 매너는 너무나 무전한 표정이다. 상대편(적수)과의 상호 존중이나 예의가 부족한 인상을 받는다. 태권도 대련서 볼 수 있는 기본 인사는 필요하지 않을까. 상금과 수입에 집착하다보면 골프 수입과도 비교한다. 정신운동을 육체적인 것에 비교하는 자세가 가상할 뿐이다.
한국의 바둑 교실은 지난 10년 만에 1,500개에서 600개로 감소했다. 한국 기원은 총 연수생이 남자 120명뿐이고 매년 남자 8명만 입단시키고 있다. 유소년·소녀 팬이 준다는 것이 암울한 장래의 신호다. 노인들의 전리품이 되지 말고, 한국 기원에만 매달릴 필요 없이 다른 바둑 단체를 만들어 경쟁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젊은 기사들은 각고의 노력이 허사 되지 않고 좁고도 험난한 입단의 길이 많이 열려야 한다. 남녀 연수생들이 14, 5세에 바둑을 포기해야 하는 비극이 안타깝다. 청소년에겐 희망과 기회만이 필요하다. 자존심을 먹고 사는 참다운 기사들에게 ‘밥그릇’이나 상금이 기성세대의 집착 같지는 않다. 오히려 승부전신에 매료되어 있다. 프로와 아마의 오픈대회들이 활성화돼야 한다.
바둑이 과연 사라질까? 서양 사람들도 체스보다는 바둑이 고차원적 정신수양이라고 한다. 컴퓨터 게임도 손들고 만 바둑 현실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체스 챔피언(14세)에 올라 8연패한 ‘미국의 영웅’이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지난달 17일) 이 바비 피셔는 말년에 “부시와 고이즈미는 교수형에 처해야 할 전범”이라고 주장하고, 해외에서 작고하면서 동양의 바둑문화를 동경했다.
바둑은 치매 방지뿐만 아니라 맛깔스런 선비자세와 품위(신사도)를 갖추고 있다. 백발 성성한 어르신들의 손자 교양에도 한 수 도움이 된다. 가풍이 아쉬운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좁쌀만한 기득권과 교만을 버리면 호박만한 이득이 굴러든다. 찬란한 바둑 바람을 잊지 말자.
김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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