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씨가 계속해서 맵고 쌀쌀 맞는 날은 혼자 계신 친정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걸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꽤 정정하시던 어머니는 아무래도 이번 겨울이 꽤 힘든 겨울이 될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겨울나기가 힘들다고 하시는 푸념 속에는 누구도 감당키 어려운 짙은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오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육체에 대한 짜증, 서글픔에다 각자 제 식구를 챙기기 바쁜 자식들의 무관심에 대한 힐난도 섞인듯하여 늘 편안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는 문안 인사지만 세상이 좋아져 전화로라도 자주 목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다는 점으로 자위하곤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노인네의 우울에 장단을 맞추기도 어려운 터 오늘은 기필코 명랑하고 즐어군 말상대를 하기로 꼭 작정한다.
“우와, 이런 날엔 엄마가 해주던 김치전 생각이 난다.” 나의 특기인 아부 작전도 별 반은 없고…. 나는 내 집 빌려주며 인심 쓰듯이 이것저것 제안한다. “엄마, 엄마 친구들 왕창 불러서 고스톱 하세요. 무지 좋아하셨잖아”, “뜨듯한 구들방에서 단팥죽 먹으면서 만화책 봐도 좋겠다….”
“으이그, 이 친구야, 이 나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스톱 칠만한 튼튼한 관절 가진 노친에가 몇 되는 줄 알아? 뭐, 단팥죽? 당뇨 없는 노인네는 또 어디 있구?”
이 시점에서 울화통이 탁 터져버린 엄마의 푸념에 다시 딱 걸려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푸념에 마음 속 깊이 젖어오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가여운 세대들이다. 우리 엄마랑 그 시대의 어르신들. 보리고개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겪은 세대들이라 이제 조금 살만하고 보니 노년의 문턱에서 이런저런 만성병이라는 원치 않는 못된 친구들만 곁에 남은 셈이다. 더구나 몇몇 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배 속의 모태 영양이나 어릴 때 영양이 부실하던 세대가 후에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게 되면 마치 용량이 작은 기계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면 고장이 나듯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고 하니 일제시대나 6.25전쟁을 치루며 어린 시대를 보낸 우리 어머니들이나 6.25전쟁 이후 부실한 영양으로 자라난 우리 모두들이 사실 당뇨병의 위험에 직면해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주변에 눈에 띄게 당뇨병이 많아졌다. 당뇨병은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병이며, 체계적인 관리만 하면 무서운 합병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병이지만 우리 미주 한인들처럼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정확한 지식과 관리기술을 터득하기 힘들다. 의료보험률이 낮고 병원 문턱을 높게 여기는 우리 이민생활의 특성을 타고 이런저런 약장사꾼들이 던지는 광고 문안도 유혹적이어서 우리를 종종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신약 한재에 당뇨가 나을 것 같으면 그런 약 회사들이 왜 금방석과 노벨상을 거머쥐지 못하고 작은 한국 이민시장만 공략하겠는가.
당뇨 조절은 매일 매일을 하루 같이 식이요법, 운동,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이 처방해주는 약으로 꾸준히 하는 수밖에는 비방이 따로 없다. 그러나 장기 관리의 성패는 본인 스스로의 의지와 정확한 정보,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의 배려에 달려있다. 이번 코리아리소스 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당뇨관리 교실’에서는 이점에 중점을 두어 참여자 스스로가 자기 관리에 주인이 되도록 도움을 주도록 하고 있다. 벌써 3기가 되는 졸업생들은 마치 학교 동창생들처럼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동아리 멤버가 되어 지식과 사랑, 격려를 함께 나누어 교실을 운영하는 우리도 한결 마음이 뿌듯하다.
그나저나 단 음식도 마음대로 들기 어렵고 외로움만 커가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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