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군수 참모부장(12)
4.19를 계기로 군대 안에서도 개혁을 위한 바람이 하극상이란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군수기지 사령관인 박정희 장군이 송요찬 참모총장에게 퇴임을 권고했다는 말이 있었다. 송 참모총장으로 보면 과거 자기의 참모장을 역임한 자이기에 그런 충고도 가능했으리라고 생각 되었다. 나의 밑에 있던 8기생 최 중령이 포함된 5명의 8기생이 참모총장의 퇴진을 종용했다고 하극상이란 명목으로 구속된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나의 부하가 관련된 탓도 있어 송 참모총장을 만나보았다. 당시의 실정으로 보면 총장에게 퇴임을 진언할 수 있는 처지라고 보았다. 나는 송 총장에게 그러한 내용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송 장군이 4.19가 수습됨과 동시에 군에서 명예롭게 물러나는 일이라 이야기하며 부하가 그런 진언을 하였다고 하극상으로 구속하는 것은 시국으로 보아 온당치 아니함을 이야기 해주었다. 나의 진언 덕인지는 모르나 다음날 5명의 8기생들은 구속에서 풀려 나왔다.
다음날로 기억한다. 김종필 중령 외 한두 명의 8기생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으며 군의 개혁을 위해 부패된 장성은 물러나야 한다고 역설을 하였다. 나도 동감이라며 당신들이 생각하는 부패 장성이란 어떤 사람을 이야기 하는지 나도 알고 싶다 했으나 자기들도 소문에만 알지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피했다. 나는 그런 정치적 태도라면 다시는 나의 집을 출입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그들을 돌려보냈고 다시는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일이 없었다. 또한 군에서 3성 장군 이상은 퇴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3성 장군도 개인 나름이지 다를 동일시하는 것도 옳지 아니한 처사로 생각하였으며 이럴 때 3성 장군이 아니라고 좋은 자리로 영전하는 것만은 삼가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송요찬 장군이 참모총장을 물러나고 최영희 장군이 총장으로, 그리고 민주당과 가까웠다고 한때 군에서 기용되지 않고 있던 최경록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되어 참모차장으로 부임하였다. 최 총장은 나에게 군단장으로 나갈 것을 강권하였으나 3성 장군 퇴역의 압력을 받고 있을 때 소장이라고 영전의 기회를 가질 수는 없어 일단 국방연구원에 가서 공부 겸 반성의 기회를 가질 것을 요구하였으나 쉽게 승낙되지 아니하였다.
내가 국방연구원에 가기로 결심한 강한 동기를 준 사건이 또 있었다. 그것은 민주당 정권에 의한 자유당 정권 때의 젊은 장관들의 형무소 수감 사건이었다. 그 장관들은 나와 연령차가 그리 많지 아니했었다. 어쩌면 그들은 나보다 더 유능해 장관이 됐을 것이다. 같은 세대에서 국가의 중책을 맡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들과 나는 별 다름이 없었다. 다만 나는 중책을 맡지 못했다는 차이만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그들이 형무소로 가는 날 나도 어떤 의미에서든지 가책의 뜻을 가져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취한 방법은 쉬운 일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머리를 짧게 깎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않기로 하였으며 국방연구원에 들어가 공부와 성찰의 기회를 갖기로 다짐하였다. 나의 머리가 빨리 없어진 것도 그와 연관 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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