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한 가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에 돈이란 부모님께 부탁하면 언제나 조건 없이 주어지는 걸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혹자가 “가난은 무기력을 낳고 무기력은 또 다른 빈곤을 낳는다” 라고 한 말에 정말 동감하는 바이다.
인도의 카이스트 제도(신분계급제도)를 뚫고 인도 중앙은행의 차기 총재 자리에 오른 나랜드라 자드하브는 이렇게 서술한다. “내가 상위 계급 가정에 갔을 때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본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내가 친인척을 만나기 위해 빈민가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그런 문제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 곳에는 전기도 없고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두는 양동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기가 있든 없든 그곳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 그들은 동기 부여가 필요하지 않다. 가장 낮은 신분 자체가 바로 가장 강한 동기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5. 10. 11)
사실 뼈저린 가난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강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다. 웬만한 고난에는 굴하지도 않고, 난공불락의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혼자서 잘 극복한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절망과 가난을 이미 경험했고 인생의 밑바닥을 쳐보았기 때문에 무서울 것도 두려운 것도 별로 없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이 큰일을 이룰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시절 배가 고파서 양조장에서 술찌끼를 가져다가 아침으로 먹고 등교를 했다. 술기운이 올라 얼굴이 붉어져서 교실에 들어갔더니 선생님으로부터 어린 나이에 술을 먹었다고 모질게 매를 맞았다 한다. 얼마나 서러웠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런 가난의 아픔이 그를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환경을 불평하는 자가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추진력을 가진 강한 자로 만들었다.
요즘따라 경기가 좋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한다. 신문 지상에도 미주 한인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가족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보도된다. 그런데 그들 중에 막상 주거지에서 쫓겨나 길을 배회하다가 배가 고플 정도로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절대 가난이 두려워서 삶을 미리 포기한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막연한 생각의 두려움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가? 살다보면 가난을 딛고 큰 사업을 다시 벌일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아니면 그 자녀들이 가난을 직접 경험해보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대통령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인생의 끝은 아니다.
가난은 개인적인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충분히 극복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승리를 향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두 살 된 큰 아이를 이끌고 임신한 몸으로 중국 식당을 찾았다. 임신 때라 먹고 싶던 9.99 짜리 점심을 한 그릇 시켰더니 그 중국집 주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스페셜 4.99짜리도 있다며 손님인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것으로 내주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그 식당을 찾아가 혼자 점심으로 그 중 비싼 메뉴를 시켰는데 스페셜은 아예 소개할 생각도 안 한다. 식당 주인이 달라졌나? 아니다. 내가 달라 보였던 것이다. 사람은 돈의 유무나 차림새에 따라 딴 사람처럼 달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의 처지가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행복한 날이 더 가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의 불행은 내일 피어날 행복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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