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연구원 및 제 6군단장 시절(3)
6군단은 서울 북방에 위치했던 까닭에 손님이 많았다. 내가 처음 만났던 손님이 4.19 시위에 가담했던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과 동년배의 군인들을 만나기를 원했고 육군본부는 그들의 군단 방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문의해왔다. 나는 그들을 일선 방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선 중대에 분산 배치해 불과 수일간의 짧은 기한이나마 사병들의 고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나의 기억에는 대과 없이 그들의 일선 방문이 이루어졌으나 그들의 활동 제약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활동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캐지 아니하였다.
다음으로 큰 행사가 동기에 이루어진 CPX(지휘소 훈련)였다. 나는 특히 족청계라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이런 훈련이 마음에 걸렸다. CPX는 지휘 훈련이었기에 부대 이동은 최대한 억제되었다. 나의 기억에는 과거에는 서울에 소요 사태가 발생되면 6군단에 소속된 병력이 서울 근교에 진출되도록 기획되었으나 어느새 이 계획은 야전군 소관으로 이관되어 양평에 위치한 1개 예비 군단 보병 3개 사단이 포함되는 대규모 작전 계획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6군단은 미 1군단의 지휘 하에 있던 관계와 서울 진출에 소요되는 많은 병력을 적의 주공 방면에서 뽑기 힘들다는 견해의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말을 듣고 있던 터라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군단에 비상이 걸리면 예비 사단의 1개 전투단이 U 지구에 전투태세로 집결되게 돼 있었으나 이것과 서울 소요사태 대비와는 관계없는 일선 방위 태세에 속한 일이었다. U지구가 어디인지 지금은 나의 기억에 없다. 6군단 CPX에는 당시의 국방장관이었던 민주당 구파에 속했던 권중돈 장관이 참석하였다. 나는 과거 5.16 당시 적 방향에서 오는 많은 무전교신량을 우려해 군단 비상령을 발한 결과 당시 예비사단인 8사단의 1개 전투단이 U지구에 집결한 것이 문제되어 나와 8사단장 정강 준장이 반혁명 재판을 받게 되었던 사실이 있다.
나는 일선을 시찰하면서 군단 방어 배치를 변경해보았으면 생각하였다. 자세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아니한다. 지형상으로 사단들의 경계와 종심 배치가 맘에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마침 육군대학생들의 일선 방문단이 군단에 도착했었다. 나는 좋은 기회로 이들에게 군단 방위 계획에 대한 부대 배치를 백지 상태에서 상신토록 요청하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습관적으로 되어 있던 군단장의 작전 개념을 요구해 왔다. 백지 상태에서 부대 배치를 상신토록 요구했으나 학생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군단장이 작전 계획을 세우는 절차를 모르는 결과인지 혹은 우유부단의 성격인지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의 의견도 참작한 새로운 부대 배치가 결정되었다. 지금은 군단의 경계선도 정면도 다 변경됐으리라 믿으나 당시의 6군단의 고민의 일단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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