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그 국문학사적 의미 때문에 흔히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원래 ‘호민론’ 같은 탁월한 정치 사회학 논문을 남긴 사회 사상가였다. 홍길동전도 호민론을 소설로 다듬은 작품일 뿐이다. 한 쪽에 불과한 ‘호민론’에는 이미 홍길동전의 핵심 요소가 다 들어있다.
“천하에 두려워할 자는 오직 백성 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범이나 표범보다 더 무섭다” 호민론의 첫 구절이다. 이건 혁명적인 선언이다. 21세기 민주 사회라면 또 모르지만, 지배 위계가 엄격했던 16세기 봉건사회에서 백성이 무섭다고 주장한 것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왜 그랬을까?
허균은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눴다. 원민(怨民)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이 마냥 수탈당하는 백성이다. 서럽고 원통하지만 항변할 데 없어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항민(恒民)은 무조건 복종하는 백성이다. 가산은 있어도 자의식 없이 지배층 처분만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호민(毫民)은 다르다. 정체성이 확실하고 의식이 깨어있다. 원민의 고통에 공감하고 항민의 무관심을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가 때를 만나면 과감히 일어나 원민과 항민을 규합해 사회 개혁에 나선다. 이게 바로 허균이 말한 호민의 사회개혁 과정이다.
허균의 호민론은 21세기 미국에도 적용된다. 차별받는 소수 인종과 서류미비 이민은 원민이다. 이들의 가슴은 기회 차별과 임금 차별로 멍들어 있다. 호소할 통로도 찾지 못한채 원한을 삭이며 살아간다. 한편 미국민 대부분은 항민이다. 부시정부에도 ‘묻지마 지지’를 보낸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 그리고 이를 빌미로 자행되는 국내 통제에도 저항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도 호민이 있다. 잭슨과 링컨, 루즈벨트와 케네디 등은 기득권의 저항을 헤치고 개혁을 이룬 호민들이다. 그러나 호민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4년 전 하워드 딘은 노무현식 풀뿌리 운동으로 개혁을 시도했으나 충분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는 돈과 인맥과 로비로 굴러가는 워싱턴을 개혁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적지않은 원민과 항민의 호응을 얻으면서 개혁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후보 지명을 따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클린턴과 오바마, 그리고 이미 후보 지명을 거머쥐고 대권을 노리는 매케인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시각은 올바른가?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는 자포자기는 원민의 것이다. 될 것 같은 사람한테 줄 선 다음 ‘떡이나 먹고 굿이나 보자’는 태도는 항민의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한인사회와 아시안 커뮤니티에 비전이 없다.
오바마는 되고 클린턴은 안 된다는 식의 얘기가 아니다. 누구를 지지하든 내 정체성과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 바람 따라 우수수 흩날리는 낙엽이나 물살 따라 몰려다니는 송사리떼처럼 행동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내게 더 유리한 정책을 갖고 있는지 분별해내야 하고, 한정된 정치력이나마 효과적으로 사용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건 다소 귀찮은 일이다. 선뜻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가 거기 달려 있다. 자녀들의 정치적 힘과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영향력은 지금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 지금은 우리 자신이 호민처럼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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