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스 데이가 끼어있는 2월은 확실히 사랑의 달이다. 사랑하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젊은이의 풋풋한 사랑과 붉은 장미, 하트형 상자에 예쁘게 담긴 초컬릿을 연상하리라. 그러나 나는 좀 더 성숙된 부부 사랑, 가족 사랑을 생각해 본다.
과연 부부 사랑, 가족 사랑이란 어떻게 전개되어야 좋을까. 사랑의 고리가 딸랑딸랑 언제까지나 가슴 앞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지마는 인간의 감정은 정지 없이 항상 흐르는 것이어서 사랑과 미움이 고리(環)가 되어 뱅글 뱅글 돌고 있다가 가슴 앞에 사랑의 고리로 머물 때도 있고 미움의 고리가 와 닿을 때도 있다. 사랑과 미움의 고리에 온도가 있다면 과연 부부 사랑, 가족 사랑의 온도는 몇 도나 될까.
열을 조절하는 중추는 뇌 속 한 부분(Hypothalamus)에 있지만 사랑과 미움의 도수는 이성으로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고 언어 발달이 요원했던 원시, 고대, 선사시대를 거치면서 사랑이란 단어 없이도 몸과 마음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정(情)이 1980년대 컴퓨터 시대가 열리면서 90년대 인스턴트 메시지, 2000년대의 텍스팅(Texting), 휴대전화 메시지를 거쳐 지금은 아날로그식 언어가 범람하면서 안타깝게도 인간의 정은 엷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고 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강에 빠져 죽을 일도 없지만, 울고 싶을 때 기뻐서 입이 함박만큼 벌어질 때 옆에 누가 있는가. 참으로 서럽고 외로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일간지에 희미한 사진과 함께 짧게 기사가 났었다. 427년 전 ‘조선시대 여인의 사랑’이란 제목 하에 중병을 앓고 있는 남편, 저승 갈 때 신고가라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섞어 미투리를 삼은 애절한 사부곡(思夫曲)의 주인공 ‘원이 엄마’ 기사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 그 기사가 실려 있다는 내셔날 지오그래픽 지를 구하기 위해 락빌 화이트 플린트 몰 안, 서점 보더스 라인에 들렀다.
우선 스낵과 커피를 시켜 숨을 돌리고 몇 개 되지 않는 간이 의자에 앉아 주위를 살펴보니 유모차에 아기 실은 젊은 엄마가 네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 아기를 데리고 서점 안을 서성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더욱이 동양계여서 마음으로 반가웠다. 연이나 진열된 책 속을 이리저리 누비며 그 매거진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 부부 붙어서 다니다가 나중에는 따로따로 다니면서 이쪽저쪽 살피다 할 수 없이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딱 한권 남았다며 아마 저기 있을 것이라고 이르며 바삐 움직인다. 눈을 크게 뜨고 월간지 꽂혀 있는 곳 두루두루 살피고 있는데 남편이 찾아왔다. 사랑의 고리가 가슴에 멎는 순간이다.
집에 돌아와서 현미경으로 보듯 미투리 사진을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미투리는 삼(麻)껍질과 원이 엄마의 검은 머리를 풍성하게 엮어 발바닥을 편안하게, 또한 발뒤꿈치 받침을 평균치보다 높고 촘촘하게 삼끈을 돌려, 얼마나 저승길이 멀기에 쉽게 벗어지지 않도록 지극한 정성으로 손보다 마음으로 삼은 것 같았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자던 남편 먼저 보내고 유복자 낳아 남편 단명 서러움의 한을 안고 외롭게 살아갔을 원이 엄마의 사랑은 화씨 100도는 되지 않았을까.
기회가 닿으면 경북 안동에 있다는 남편 무덤 옆에 석상으로 남아있는 원이 엄마의 사랑을 담아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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