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리대사의 헌정질서 복귀 공한
5월17일이 되었다. 육군본부에서 회의가 열린다고 들었다. 참모들의 공기도 들떠 있었다. 나의 매부인 육사 교장 강영훈 중장도 회의에 참석하였다 한다. 나는 야전군 사령관에게 군단장 회의를 건의키 위해 수차례 전화를 시도하였으나 전화를 받아주지 아니하였다. 적어도 국가 비상시국에 군단장의 의견이라도 통합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야전군 참모장인 황헌친 장군에게 그 뜻을 전하며 화를 냈다. 자기도 연락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참모들 이야기로는 5군단장인 박림항 장군은 혁명에 동조적이라 하였다. 그는 박정희 장군과 같은 만주군 출신이니 그러할 수 있었을 것이다. 1군단장 최석 장군은 학병 출신으로 5.16날 아침 군사령관실에 모였을 때부터 혁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같은 학병 출신인 2군단장인 민기식 장군에게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아니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가위기 시 야전군 내의 중요 지휘관들의 견해가 개진되지 못한 채 국가가 위임한 막강한 군사 지휘체제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은 쿠데타의 성패와 관계없이 군의 고위 지휘관의 한 사람으로 허용될 수 없는 통수력의 결함이라 생각되었다. 육군 참모총장이 반란군의 압력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는 야전군 사령관에게 자동적으로 군의 통수권이 부여된다고 생각되었다. 장도영 참모총장도 예하 군사령관들과 국가 위기를 같이 고민한 증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군사 쿠데타 성공의 이면에는 이런 군의 통수 능력 장애의 원인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군의 지휘 계통뿐 아니라 정치적 통수 계통도 나을 것은 없었다. 국무총리는 수도원에 잠적하여 8군 사령관의 접촉 노력을 불가능케 했으며 대통령은 유혈을 희망치 아니한다는 일반 논리로 국가위기 시의 군사력 사용을 실질적으로 불가능케 만들었다. 국가를 위해 군이 유혈을 기피한다는 말은 어쩌면 군사력을 쓰지 못하게 하는 말이 된다. 공산 혁명이라도 쉽게 달성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면 참으로 나라를 위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7일 아침 8군을 통해 마샬 그린 미국 부대사의 군은 헌정에 의한 정통 정부에 귀속하라는 요청서한이 도착하였다.
당시 대사의 궐석으로 그린 부대사가 대사 대리를 하였다. 참모장 이준학 준장은 이 서한의 부대 하달을 망설였다. 나는 그 공문이 쿠데타 참여 군이나 기타 부대에 대한 주의로 받아들였으며 나의 의사를 부대에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공문의 예하 부대 하달을 지시하였다. 이것 역시 나의 반혁명 죄목의 하나가 되었다. 참모들의 보고에 의하면 야전군 사령관 이한림 장군이 춘천 방송국을 통해 혁명지지 연설이 있었다고 들었다.
후에 그레고리 헨더슨 미 대사관 공보관의 5.16 일지에는 방송 장소가 춘천이 아니라 원주라고 적혀 있음을 읽었다. 군사 쿠데타는 혁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저녁에 포병단장인 문 대령이 명령 없이 포병을 서울로 데려간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사죄와 함께 양해해달라는 전화를 해왔다. 밤 늦게 장도영 참모 총장으로부터도 포병을 곧 돌려보낼 터이니 장교들에게 심하게 대하지 않을 것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포병은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최근에 나온 장도영 장군의 자서전에는 6군단 포병을 돌려보냈다고 되어 있다. 장 장군의 지시가 통하지 아니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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