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형무소 수감
5월21일이 되었다. 부관을 통해 서울 방문의 소식을 들은 집사람이 전화를 해왔다. 서울행이 예사롭지 못한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였다. 참모차장에서 국방장관 보좌관으로 간 김형일 장군이 어제 저녁에 구속되었다 한다. 그러나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가지 있다면 미 1군단장에게 서울 가는 이유를 직접 보고하는 일이었다. 서울 방문을 직접 보고한다면 그가 나의 서울행 내용을 사전에 알아보며 조언을 해주든지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나는 평소 서울 나갈 때는 라이언 장군에게 직접 전화를 하곤 했다. 그날따라 집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라이언 장군에게 구명운동을 하는 느낌이 들어 직접 전화 대신 비서실로 하여금 전화 보고로 대신하게 하였다.
국가재건 최고위원회는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당시의 국회 의사당 안에 있었다. 그리로 가기 위해서는 당시의 중앙청(지금의 광화문 자리)을 거쳤다. 서울행은 공용이므로 헌병 차량의 호송을 받았었다. 중앙청사 정면에 못 미친 거리에서 갑자기 호위 헌병 차량은 두 손을 벌린 여인에 의해 정지되었다. 나의 차량에 동승했던 김희양 부관(육군 소령)이 차에서 뛰어내려 여인 앞으로 다가갔다. 나의 아내가 우리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호위차를 세운 것이다. 나는 차량에서 내렸다. 집사람은 아침에 전화로 하던 이야기를 되풀이하였다. 나는 당신이 군인의 아내이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하며 아이들이나 잘 보살펴달라는 이야기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혁명이 성공하려면 나 같은 사람은 죽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여주며 차에 올랐다.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우연히도 미국 대사관에 근무 중이던 나의 막내동생 환수와 대사관 문정관이던 그레고리 헨더슨 씨도 각자 별도로 점심에 나왔다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어 만나는 일이 생겼다. 아마 이것이 미국사람 귀에 먼저 들어간 나에 관한 정보이며 동생은 혁명정부 기간 중 감시 하에 놓이게 되어 그때 미 대사관 근무를 떠나 직장을 옮길 예정을 취소하고 끝내 은퇴할 때까지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나는 국회 의사당 정문 계단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다. 한 대위가 내 곁으로 와서 안내하는 척 하더니 옆구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나를 덕수궁 안으로 데려가 무장해제를 시키지 않는가. 나는 어느 정도 각오는 돼있었으나 하급 장교의 무례함에 불쾌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대위는 인상으로 보아 차지철 대위인 듯하나 나는 그와 면식이 없었다. 나는 해가 질 때까지 덕수궁에 머물다 마포 형무소로 이송되어 두 칸도 되지 않는 마포 형무소 감방에 수감되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니 답답증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밤늦게 군단 포병부장인 문재준 대령이 감방을 찾았다. 그는 감방 안으로 들어와 사과를 하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선배님들은 군보다 외교계에서 대사직으로 전환함을 권유하였다. 그는 군단 포병 사령관 직으로부터 떠나 있는 듯하였다. 내가 포병단을 방문하려 한 것도 서울 사정을 모르고 있었음이 나타났다. 후일 문 대령은 헌병사령관이 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하튼 국회 의사당 앞에서의 무례하였던 대위에 비해서는 예절을 갖춘 문 대령의 배려가 고맙게 생각되었다. 후일 그는 장도영 장군 반형명 사건에 연루되어 형을 살게 됐으며 혁명 재판정에서 나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려 노력하여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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