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된 혁명 재판
12월 말경이었다. 박정희 장군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의 재판이 재개된다는 소문이 있은 후 워싱턴 포스트 지에 실린 나의 재판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곤혹의 뜻이 국내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혁검 부장인 박창암 대령이 미국의 약소민족에 대한 전형적 간섭이라며 나로 하여금 부당 성명을 발표하도록 매부인 강영훈 중장을 통해 압력을 가해 왔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불리하더라도 혁검의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주셨다. 강 중장의 이야기론 어떤 형식으로든지 신문에 발표함이 가하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쿠데타 기간 동안 나의 문제로 미국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지도 바라지도 아니하였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 개인 문제이니 미국정부가 개입될 바는 아니라는 선에서 한국일보에 근무하던 김용장 기자를 통해 그 신문에 발표하였다. 나는 자식의 안위 앞에서 정의의 길을 택함을 조언해 주신 양가의 아버님께 자부심과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나의 문제로 스스로 UN군의 개입을 원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나의 당시 지휘 계통으로 보아 나의 재판이 국제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61년 1월 3, 4일경으로 기억된다. 혁검으로부터 내일 재판을 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그리고 저녁에 김종오 육군 참모총장 부인을 통해 재판에 나갈 때 겨울 준비로 두껍게 입고 나가라는 전화가 있었다. 나는 재판을 시작하는 날로 재구속하려는 눈치를 알아차렸으나 김 총장은 알면서도 말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재판에는 한국 솜 바지저고리를 입고 나갔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검사에 의해 다음과 같은 4개항의 죄과가 고발되었다. 4개의 죄목은 ▲부대에 비상을 걸어 혁명군을 공격하려함 ▲홍종철 군단 작전참모와 포병 부장 최 대령을 구금 ▲혁명에 참가한 군단 포병단에게 귀대 명령을 발함 ▲마샬 그린 주한 미국 대리 대사의 정통 정부에 귀속해 달라는 통지문을 예하 부대에 전달함으로써 혁명을 방해했다는 죄과였다. 검사는 무기를 구형하면서 도주의 우려가 있어 구속을 신청하였고 재판장은 이의 없이 검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나의 첫날 재판에는 8군 병사 한명이 참관하였다. 나는 이렇게 재판정에서 수갑이 채워져 다시 서대문 형무소로 가게 되었다.
저녁 무렵 서대문에서 수속을 받은 후 들어간 감방에서 이미 기소 중에 있는 3명과 합방을 하게 되었다. 한 명은 부산에서 온 혁신 계열 사람이며 한 명은 군인출신으로 부정축재로, 또 한 명은 잡범이었다. 한 명 정도가 수용되는 좁은 감방에 4인이 수용되니 변기의 냄새에 더하여 사람의 냄새에 시달리며 다리를 뻗고 잘 수 없어 불편했으나 그럭저럭 불편한 가운데도 잠이 들었다. 감방은 겨울인데도 화기 없는 냉방이었으나 많은 사람으로 그런대로 온기를 유지한 듯하다. 아침에는 한 사람씩 복도에 나가 세수와 이를 닦게 돼있어 쓰레기 치우는 다른 감방 사람과의 대화의 기회나 재판소 출입을 통해 형무소 내와 외부의 소식도 들어오곤 했다. 감방 위에는 조그만 창문이 있었다. 냄새를 뽑기 위해 추운데도 종종 창문을 열어야 했다. 저녁에는 인왕산에 걸린 석양이, 밤이면 처량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 나는 종종 현재명 씨의 노래 ‘해는 저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둥근 달을 바라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가 연상되어 마음속으로 불러보곤 하였다. 지금은 이 서대문 형무소 자리가 일제의 한민족 탄압 박물관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일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사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이며 나의 애환도 끼어있구나 하고 쓸쓸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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