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형을 선고받다
나는 혁명재판이니 변호사의 역할이 팔요 없다 생각했으나 누구의 주선인지는 잊었으나 사설 변호인으로 민주당 정권의 법사위원장이었던 윤형남 전 국회의원을 위촉하였고, 사건의 내용과 죄과가 구성될 수 없다는 나의 개인 생각을 적어 필요시를 위해 집사람에게 남겨 놓았다. 나는 윤 변호사를 형무소 면회 시간을 이용, 단 한번 그것도 지극히 짧은 시간 만났으며 직업적인 변론을 위한 상의를 한 적도 없었다. 윤 변호사는 나의 기록을 읽었으며 내용을 안다는 대답이었다. 아마 그는 혁명재판이니 재판의 결과는 변론 여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다. 많은 재소자들은 변호인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교환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불평을 하고 있었다. 훗날 내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만 있다면 제일 먼저 인권 옹호를 위해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하겠다고 옥중에서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나의 재판은 정강 장군과 같이 심리되었다. 나의 죄과 중 미 대사 공한 예하부대 하달 죄목은 국제성을 피하기 위해 삭제된다고 하였다. 나는 왜 정강 장군과 같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되지 아니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정 장군이 부대 동원을 한 것이 나의 비상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 장군으로부터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것으로 문제가 된다면 군단장의 책임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결과는 내가 징역 10년을, 그리고 나의 명으로 사단의 비상이 걸린 정강 8사단장은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내가 명령권자로 인정된다면 정강 사단장은 당연 무죄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명령권자보다 더 무거운 죄를 받았다는 자체가 이성적 재판이 될 수 없었다. 고등고시를 통과한 판검사의 독립된 양심이 의심되었다. 정 사단장은 기소된 사실 외의 건으로 희생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의 구속이 부하에 대한 책임 전가를 막을 수 있다는 나의 희망은 무산되었다. 정 장군은 후일 병사해 동기생인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호의로 전 육군 준장 정강이란 비문과 함께 육군 묘지에서 아직도 충실하였던 군인으로서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
재판의 증인으로 참모들이 불려 나왔다. 참모장 이준학 준장, 작전 참모이며 군단 헌병부장실에 보내졌던 홍종철 대령(당시 혁명군의 최고위원), 작전 참모 대리 작전처 차장 채항석 중령, 그리고 정보참모 강창성 대령의 증언이 있었다. 참모장 이 장군은 성의를 다해 증언을 해주었다. 후일 들은 이야기로는 증인들이 사전에 혁명검찰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았다 한다. 홍종철 대령은 증언을 통해 군단장이 평소 민주당에 대한 불평을 많이 하였다는 증언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려 노력을 하였다. 군의 지휘관이라면 군단의 비상 선포는 당시의 적 동향으로 보아 최소한의 조치였을 것이다.
비상 하에서는 예비사단의 1개 연대 전투단이 사전 계획된 U지역에 자동 집결케 돼있음을 군단 작전참모라면 알고도 남는 일이었다. 나나 8사단장을 위해 군단 실정을 감안 비상령이 필요함이 증언되어야 했다. 그러나 홍 대령의 증언은 평온한 환경에서 비상이 필요 없었다는 증언이 되었다. 재판관들도 검찰도 이를 더 추궁하지는 아니하였다. 나는 혁명에 목숨을 건 젊은 장교로서, 그리고 군단의 작전 참모로서 공사를 분간함에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포병 출신이라 작전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던 것인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비상과 8사단의 동원이 재판의 핵심문제였으므로 재판 진행상 필요했을는지 모를 일이었다. 혁명 대열에서 국가를 논의하는 책임자가 될 사람은 공사를 가리며 소신이 있기를 나는 기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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