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 미국 유학
1962년 봄이 되었다.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김종오 대장으로부터 미국 가는 기회가 있다며 의사를 문의해왔다. 혁명 정부와 8군에서 다 합의된 것이라 하였다. 원래 나도 1961년도에 쿠데타로 강제 퇴역된 장성들과 같이 미국 유학을 가게 되어 있었으나 재판 관계로 가지 못했다. 유학이라는 것은 명칭뿐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군사 정권이 실패했을 때의 대체세력을, 그리고 군사 정권으로서는 위험 분자들의 해외 축출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나는 감시 체제에 있던 불편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또 못한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김 총장에게 몇 년 가있을 수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망명이라는 명분이면 가지 않겠고 내가 원하는 기간 공부할 수 있으면 가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세히는 몰라도 우선 1년이며 공부를 더 계속하고 싶어질지는 가보아야 알게 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나는 얼마 있다가 전년에 미국에 가있던 이한림 장군으로부터 고통스럽고 건강에 해 되는 미국 유학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의 편지를 받았다. 결국 나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얻어 시애틀에 있는 University of Washington에 반 유학 반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내가 그곳으로 가게 된 것은 몸이 약하니 기후 좋은 곳으로 생각한 8군의 배려와 미국 정치와 연결되지 아니할 곳을 요망한 한국 정부와의 절충안이었다.
나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감사와 작별 인사를 위해 당시 국가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과 8군 사령관을 방문하였다. 박정희 장군과의 만남에서는 장도영 장군과 내가 부하들보다 앞서 나오게 됨은 통수법을 존중하는 군 지휘관으로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현재 민주당 출신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시기를 보아 곧 풀어주겠노라 하였다. 나는 이 문제로 1962년 겨울 박 장군이 맥아더 원수 장례 차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로에 시애틀에 들렀을 때와 66년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와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으나 별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나는 군의 고위 장성으로 나의 부하였던 정강 장군 뿐 아니라 30사단장 이상국 장군과 장도영 장군 사건으로 형을 살고 있던 하급 장교들의 자유를 위해 책임이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혁검에서 주장하는 미국 측의 나에 대한 관심이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나의 동생 때문이라는 비난과 나의 재판이 꼭 필요했으며 나를 일단 석방한 후 다시 재판에 회부한 이유를 박정희 장군에게 물어 보았으나 대답을 얻지는 못하였다.
나는 멜로이 8군 사령관을 만나보았다. 그는 군사 혁명 때는 8군 부사령관이었으나 매그루더 대장 후임으로 8군 사령관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나에게 군사 혁명 정부의 장래를 예측하는 질문을 하였다. 나로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혁명에 가세한 장교들 중에는 군에서 사고 등으로 어차피 제적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상기시키며 혁명의 성공을 위해 박 장군이 많은 부하를 정리해야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 그들이 막중한 국가 책임을 통감하고 분발한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도 없을 것이며 나의 개인 불행이 국가의 발전 차원에서 보상되길 바라노라 말해주었다. 멜로이 장군은 나에게 그런 기적을 믿느냐고 질문을 계속하였다. 나는 평소에 옳은 사람도 권좌에 오르면 변하는데 기적과 요행을 바라지 않음이 나의 인생 태도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나의 인생을 바꿔보는 기회를 반신반의하면서 1962년 8월13일 가족들의 전송을 받으며 김포공항에서 프로펠러기로 근 24시간이 걸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무더운 날씨와 지루한 여행이었다. 괌과 하와이를 경유하여 샌프란시스코의 트레비스 비행장에 도착한 것은 한국을 떠난 같은 8월13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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