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미국 도착과 내조
나는 만약 나의 미국 체류가 1년이 넘는다면 집사람에게 미국 경험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린 시절을 만주 백계 러시아 사람이 많던 국제도시 하얼빈에서, 그것도 아버지의 직책 관계로 러시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관사지대에서 비교적 개방된 환경에서 자라난 탓도 있었다. 그보다 나는 1944~5년을 캔사스에 있는 미 참모대학 유학동안의 경험을 통해 소박하며 실용주의적 가정생활과 개방된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정과 자녀 교육에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만 자란 집사람에게 같은 생활 철학을 공감케 하기 위해서는 집사람의 미국 경험이 대가를 치룰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에게 친절했던 도허티 할머니의 도움으로 내가 시애틀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초청장을 서울로 보내게 되었다. 집사람은 세 가지 문제로 난색을 표했다. 하나는 반혁명 분자의 가족을 외국에 보낼 수 없다는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와 4 남매의 양육 문제이고, 맏며느리로서 시아버지의 환갑을 앞둔 일이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집사람은 1963년 1월30일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집사람은 내가 공부하는 동안 영어를 배워야했고 그 후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양육을 돕기 위해 미국 친구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재봉일을 시작하다 후에는 워싱턴 주립대학 병원 병리학 연구실에서 직장 교육을 통해 현미경 기술자가 되었다. 훌브라이트와 아시아 재단으로부터의 장학금이 끝난 이후부터의 나의 학교 등록금은 집사람의 학교 병원 취직으로 면제되었다. 나는 박사 과정을 위해 가톨릭 대학에서 조교로 학자금 면제와 약간의 생활 보조비를 받게 돼있었다. 나는 시애틀에서 집사람을 서울로 직행시키려하다 이왕 미국까지 왔을 바에는 수도 구경이라도 하고 보내야지 생각하여 워싱턴까지 같이 오게 되었다. 다행히 주한 미 대사관 문정관으로 있었으며 나의 동생 환수를 아끼던 맥타갯 박사가 홀아비로 가톨릭 대학에서 보행거리에 단독주택을 갖고 있었다. 나의 형편이 풀릴 때까지 같이 있기를 강권하는 바람에 내외의 임시 숙소가 마련되었다.
부부가 헤어진다는 것은 나에게는 자식과 헤어지는 것보다 어려웠던 것 같다. 만약 집사람에게 적당한 직장이 주어진다면 후에 아이들을 데려올 수도 있지 않은가 생각이 바뀌면서 집사람은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우선 AFIP(월터리드 육군병원 내에 위치한 국방군 병리학 연구소)에 취직 지원서를 내보았다. 그러나 시민권도 영주권도 없었던 집사람인지라 미국 국방성 산하 기관인 AFIP 취직에 그리 희망을 갖지 못해서 임시로 백화점 점원 자리에 나가기 시작했다. 기대치 아니했던 AFIP에서 일본말을 할 수 있는가를 문의해왔다. AFIP에서 일본 병리학자들의 교환 프로그램으로 통역이 가능한 현미경 기술자를 구하고 있었고 일본어를 아는 집사람은 영주권과 시민권 없이 취직되어 10년간 매년 계약 경신을 하며 근무하였다. 그리하여 아파트 값은 나의 조교 보수로, 생활비는 집사람의 몫이 되었다. 1967년 말 헤어진 지 5년 만에 아이들을 서울에서 데려오게 되었고 AFIP에서 시민권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10년 후 나를 제외한 집사람과 아이들은 시민권을 얻게 되어 때때로 우리는 국제결혼을 하였다는 농을 하게 되었다. 집사람은 일본 의사들의 덕으로 교육학 전공에서 병리학 전자 현미경 기술자로 24년의 AFIP 근무를 내가 연세 대학 초빙 교수로 나가는 1990년에 마무리했다. 중년 나이로 전업 주부에서 병리학 전문 기술자로의 제2 인생을 살게 된 집사람의 노력과 고충과 인내는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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