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선교사가 성경번역 독회를 위해 목포로 가던 중 짙은 안개로 배가 충돌하는 바람에 어청도 인근에서 순직하였다. 1902년 6월의 일이다. 지금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있는 아펜젤러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가묘로만 모셔진 셈이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게일과 언더우드, 그리고 1885년 조선에 발을 디딘지 7년 만에 순직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목숨 바친 대가로 이루어졌다. 아펜젤러의 순직을 놓고 “순교자의 피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거룩한 씨앗이라”고 게일 목사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던 경제학의 명제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나성 배재 코럴이 워싱턴을 찾은 이유는 조선교회의 지평을 열었던 미국 교회와 선교 지도자들의 은덕을 기리고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펜실베니아 주 랭카스터 교회는 아펜젤러를 파송하였고 아버지를 잃은 아펜젤러의 자녀들이 장성하여 부모의 뒤를 이어 조선의 선교사로 파송되도록 지원하였다. 아펜젤러의 딸은 이화학당 교장을 지냈고 아들은 배재학당장으로 봉사하다 조선에 묻혔다. 볼티모어 러브리 레인 교회는 조선 선교가 가능하도록 헌금을 보내었고 그 중심에 존 가우처 목사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쓰임 받은 주님의 사람들이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지긋한 감흥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은 대학 시절 둘도 없이 가까웠던 오명렬 이라는 친구다. 지난 6년을 선천성 당뇨로 사경을 헤매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나마 나머지 눈의 시력도 온전할 리 없다. 심지어는 자신이 내 결혼식의 사회를 보았다는 사실조차 기억을 하지 못했고 때로는 자신의 이름 석 자 기억하기조차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의사는 신장 기능이 멎은 그의 죽음을 예감하고 세 차례나 장례를 준비하도록 의사 판정을 했다. 부랴부랴 타지에 있던 자녀들을 불러 모으는 촌극도 연출하며 죽음을 밥 먹듯 예행연습을 한 친구가 내 면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차라리 한편의 소설이요 부활적 사건이다.
소설가 김훈은 현충사 사당에 걸린 충무공의 장검에서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라며 ‘칼의 노래’를 썼다. 영웅과 생사의 고락을 함께 했던 장군의 칼이 느끼는 절대 고독의 소리이다. 그 칼이 맛본 처절함과 고뇌를 노래하듯 지난 몇 년 동안 죽음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든 친구는 이제 부활의 날개짓을 몸으로 노래하고 있다.
샘나도록 탁월함 재능을 지닌 친구가 생사의 간극을 놓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온 이후 그에게서 신의 존재의 무한한 깊이를 느끼게 된다. 미움도 집착도 버려야만 하는 나이에 삶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경지를 깨닫게 해준다. 주님을 경험하거나 새로운 눈으로 인생을 살게 된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누릴 영적 성숙이다.
신앙의 정통성에 매달리는 일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교리보다는 몸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변화산 상의 깨달음이다. 친구 오명렬의 노래가 남다른 것은 결코 명예나 돈으로 얻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을 깨달은 사람만이 누리는 자유와 평강이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나사로도 결국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영원한 인생이 없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친구도 운명적 죽음을 피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절대자 앞에 기름 넘치도록 영원에 대한 비밀의 약속을 받은 친구가 부른 은혜의 감동이 왜 이리도 잠 못 들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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