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상사는 벌떡 일어났다. 간이 탁상 위의 시계가 오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은땀이 가슴 한 가운데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다시금 얼굴에 두건을 쓴 반군이 아들 건이와 석을 향해서 총을 겨누고 있지 않는가.
신 상사는 몸을 떨며 눈을 떴다. 시계 옆에 놓인 두 아들과 부인 사진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밝게 웃고 있었다. 눈을 돌렸다. 왼쪽에 텅 빈 4개의 간이침대 위에 어제 자동차 폭발로 사망한 부하들의 소지품이 봉지에 싸인 채로
놓여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바지위로 떨어졌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대대장 칼 소령이 신 상사를 찾아왔다. 그는 전투복을 입은 채로 잠들어있는 신 상사를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명령서를 전달하고는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명령서는 한국군 사령부에 새 무반동총 훈련을 위해 일주일 파견근무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헬리콥터로 한 시간 비행 후 일행은 한국군 연병장에 내렸다. 신 상사는 긴장되었다. 세 번의 이라크 근무 중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 환영 나온 군인들의 시선이 모두 자기에게 오는 것 같아 신 상사는 머리를 숙였다.
병영은 너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미국에 있는 여느 훈련소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도 방공호며 방어막은 철통같아 완벽하게 보였다. 놀랍게도 병영에 심겨진 작은 나무들이 벚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있었다.
사령부 입구에는 여군들이 일행을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거의 하얗게 보이는 전투복을 입은 한 여군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할 때 신 상사는 하마터면 놀라서 뒤로 물러설 뻔했다. 어쩌면 돌아간 애들의 엄마와 꼭 닮질 않았는가.
시범 훈련장에도 그녀는 응급치료 완장을 차고 내내 신 상사의 시범을 지켜봤다. 아내가 2년 전에 혈액암으로 죽기 전에 하얀 얼굴로 자기를 뚫어지도록 바라봤던 그 모습이었다. 신 상사는 서툰 한국어를 애써 사용 하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시범이 끝나고 식사시간에 사령관이 친히 신 상사를 장병들에게 소개할 때 그녀는 그에게로 와서 자기소개를 했다. 곧 연수 때문에 미국 통합병원으로 전출될 거라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녀의 가슴엔 중위 옥희 리 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부대 복귀 후 신상사의 대대는 요르단 국경 지대로 이동했다. 신 상사는 국도 순찰 임무로 연일 차량검사와 알카에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지열과 차체 엔진이 달구는 열기에 숨이 막힐 때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는 샘솟는 오아시스다. 때로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전쟁터에서도 떴다. 모두가 넋을 놓고 쳐다본다. 그리고 가슴이 메게 된다. 신 상사는 더욱 그랬다.
그 짧은 순간에 민간인 트럭이 과속으로 검색차를 추월했다. 위장한 반군이라는 예감이 스쳤다. 트럭 위에 불쑥 나타난 저격병이 로켓포를 겨냥하고 있다. 존 하사가 기관포로 벌집 쑤시도록 트럭에 쏘아댔다. 섬광이 하늘로 치솟는다. 붉은 것들이 수없이 튄다. 한참 후에야 귀가 멍멍한 폭음이 울렸다. 옆에 섰던 마크가 쓰러졌다. 짚차의 앞부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신상사가 마크를 일으키려 할 때 힘이 없었다. 그는 시원해오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오른쪽 다리가 없다. 그는 쓰러졌다.
월터 리드 병원 창문으로 보이는 길가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흰 눈이 나무마다 내린 착각을 하게 했다. 마음도 차가운 흰 눈으로 덮여왔다.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때마침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이옥희 중위가 들어섰다. 그 뒤로 건이와 석이가 울음 반 웃음 반 “대디” 소리치고 그에게로 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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