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낸 이순신은 할 수 없이 봉쇄를 풀고 동진하여 고니시를 구원하러 오는 일본 선단 500척을 노량에서 서북풍을 이용한 화공전으로 대파하였다. 이때의 일본군은 철군하는 부대가 아니라 고니시를 구원하기 위하여 서진하던 구원군이었으므로 ‘철군하는 선단을 비겁하게 공격했다’는 비난 또한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의 친필 일기를 보면
9월 20일=유도에 와보니 제독 유정이 벌써 진군해왔다. 수륙으로 협공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 다분히 겁내는 모양이다.
9월 27일=군문 형개가 편지를 보내어 수군이 신속히 진군한 것을 칭찬한다.
10월 1일=진린이 유정과 (협공을) 협의하고 왔다.
10월 3일=진린, 유정과 협의한 대로 진군하였으나 사선 19척 호선 20척을 불태워 잃었다.
11월 8일=왜교의 적들이 10일까지 철퇴한다는 통지가 육지로부터 왔으니 퇴로를 차단하라고 진린이 지시했다.
11월 15일=왜선이 두세 번 도독(진린)에게 드나들었다.
등으로 일본장수들이 다급하여 개인적으로 뇌물공세로 퇴로를 애걸한 흔적이 있을 뿐 공식적인 정전협정의 논의의 흔적조차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왜곡된 기술의 출처는 어디일까. 이 기술의 출처는 일본임이 분명하고 그 기술의 발생은 500척 중 50여척 밖에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 치욕을 변명하기 위하여 귀환한 왜장들이 꾸며낸 구실에서 비롯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는 일본 수군 장수들이 이순신에게 패할 때마다 조선 수군의 군세를 5배 10배씩 과장해놓은 행태와 맥을 같이 한다.
이 밖에도 문제의 백과사전 원문 기술에는 이순신의 출생지를 개성 근처인 개풍으로 일본식 오기를 했고, 본과 자의 한문 표기를 엇갈려 표기했으며, 명량해전의 13척 조선전함은 전부 헤어진 판옥선으로 거북선은 있지도 않았는데 13척 모두 거북선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이순신 전사 후 선무일등공신에 책록 되었는데 선무삼등공신으로 오기하여 어이없게도 오류투성이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투나 기술방식으로 보아서는 전부 일본 기술이라고 보이지는 않아 우리나라에서 제공하였으되 학생 수준의 부실한 집필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오술의 발단은 백과사전 편집주체가 일본의 자료를 일방적으로 채택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의 지극히 자랑스러운 선인을 세계에 바로 알리는데 험난한 전정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러한 오류와 왜곡을 시정하는데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마침 이달 28일은 충무공 탄신 46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순신 장군을 전 세계에 바로 알리는 작업은 정부나 학계만의 몫이 아니며, 한국 국민은 물론 해외동포들까지도 자신의 영역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음을 이번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이러한 왜곡과 오류가 발생한 원인에는 우리의 국력과 외교력의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의 후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거주국에서 핵심 인사가 되었을 때 모국의 훌륭한 민간외교사절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민족 역사 문화 교육을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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