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동삼 교수 전자컴퓨터공학, VA텍 한인학생회 지도교수
버지니아텍 참사 1주년에 붙여
지난해 4월16일 월요일,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에 눈발까지 날리는 날씨였다. 갑자기 사무실 창 밖으로 경찰차와 응급차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줄지어 달려가는 소리, 조용한 버지니아 산속의 대학 도시는 일순간에 큰 충격과 슬픔에 뒤덮였다. 다음날, 총을 쏜 사람이 한국 학생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버지니아 공대 한국 학생들과 한국교수들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학생회 지도교수로서 학생회 간부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한국 학생으로서 특별히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학생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커갔다. 여러 가지 악성 소문들이 이메일을 통해서 전염병처럼 학생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아파트 문을 걸어 잠그고, 온 식구가 집안에 숨어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달랐다. 학교 중앙 캠퍼스 임시 추모장에는 조승희 추모석이 다른 희생자 추모석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추모석에 꽃을 놓고 추모 판에 글을 남겼다. 누구도 한국인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버지니아 공대의 일원이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도와 이 어려움을 극복 해 나가자는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우리 한국사람은 이 대학의 일원이 아닌가? 우리는 왜 떳떳하게 저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지 않는 것인가?” 마음이 우울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났다. 한인교회에서 갖기로 했던 추모 기도회가 취소되었다. 한국사람이 많이 모이면 사고가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날 밤 나는 버지니아 공대 전 한국 대학원생에게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긴 이메일을 보냈다. “집안에서 나와라. 이 대학의 일원으로서 슬픔을 같이 나누고, 장례식에 참가하여 유족들을 위로하자. 자랑스러운 한국의 아들딸로 떳떳하게 행동하자.”
나흘이 지난 후 합동 추모식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학교의 상징인 주황색 옷을 입고 빼곡히 중앙 캠퍼스에 모여들었으나, 정치인들의 화환이나 내 자식 살려내라고 통곡하는 유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정각 12시에 종이 한번 울리고, 하얀 풍선 한 개가 하늘로 올라갔다. 두 번째 종이 울리고 또 한 개의 풍선이 올라갔다. 화창한 봄날 창공을 향해 자유로이 날아가는 풍선들이 내 눈을 적셔왔다. 마지막 풍선이 올라가고 추모식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그 후 대학 당국은 여러 위원회를 만들어서, 모금 운동부터 추모관 건립일까지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버지니아 주 정부는 특별조사반을 만들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개선조치가 포함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 어느 한구석에도 한국인이 도덕적이든 간접적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 해서 일 년이 지났다. 겉으로는 모든 일이 조용히 차분하게 지나갔다. 대학은 다시 일상의 평온함으로 되돌아갔다. 한집 건너 옆집에 사시던 교수분이 그 사건 때 돌아가셨다. 그분의 아내는 그 이후 어린 딸을 데리고 동네를 산책한다.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그날의 아픔이 잔잔히 배어 나온다. “누가 저들의 행복을 빼앗아 갔는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