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는 식의 틀에 짜여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여행이란 누구에게나 신선함을 안겨주는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나는 해마다 벚꽃이 피는 사월 초순 돈 들여 며칠씩이나 떠나는 긴 여행이 아니라 하루해의 짧은 몇 시간의 외출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을 한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워싱턴 DC 벚꽃구경 다녀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
만개한 벚꽃 하나 보자면 집 주위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겠지만 매일 타고 다니는 자가용 승용차로 낯선 호젓한 공원길로 드라이브 삼아 나가는 기분은 그래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토마스 제퍼슨 메모리얼을 끼고 커다란 호숫가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쳐다보며 한 바퀴 산책을 하자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리는지라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손가방에다 물병에, 캔디에 자질구레한 간식들을 챙겨 넣는 시간에도 기분은 한껏 상쾌해진다. 올 해도 예외일 수가 없어 색다른 바람을 쐬러 가자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더니 올해엔 아이들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간절히 바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저 바쁘게 살아 얼굴 보기조차 힘든 직장 초년생 두 아이들과 시간을 가까스로 함께 하여 일요일 아침 우리는 아주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일찍 출발했다.
일찍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는 때가 때인 만큼 우리가 옛날 어렸을 적에 시골서 서울 창경원 벚꽃 구경 가자고 계획을 세우고 큰마음 먹고 구경 가듯이 DC의 벚꽃 구경도 만만치 않게 소문이 난지라 여러 곳에서 오는 많은 사람 때문에 주차장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어 누구나 일찍 서두는 것이다.
일찍 서둔 덕인지 어렵지 않게 주차를 시키고 우리 네 식구는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해마다 봐오지만 언제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벚꽃의 터널 속을 걸으며 자연의 신비로움에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모처럼만에 두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하는 시간이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산뜻하고, 재물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하고 좋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왕에 아이들과 함께 나왔으니 한국전쟁 기념비가 세워진 곳에 가보자는 남편의 말을 따라 그 곳으로 가보니 왠지 마음이 숙연해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들도 전쟁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한 세대이지만 남편은 아이들한테 한국전쟁 기념비에 대한 설명을 아주 진지하게 해준다. 아이들 역시 이해가 가는지 안가는지는 모르지만 표정은 제법 심각해보였다.
어느덧 의젓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버지보다 더 키가 커버린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세월의 무상함과 더불어 듬직한 두 아이의 모습에 이 세상이 온통 다 내 것인 양 착각에 빠져보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걷다보니 힘도 들지만 이마에 솟아나온 땀방울 위로 바람이 스칠 때면 더욱 시원함을 느낀다.
끝없는 허공을 향해 내 마음을 전해본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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