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어떤 남편의 편지를 요약해본다. 그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는 편지를 썼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새삼 나도 그의 부인처럼 아들만 위한 적은 없었나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늘 문득 오래 전 먹는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대이지만 아버지를 하늘처럼 받들던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없는 반찬에도 아버지 밥그릇의 한복판에만 들어있던 계란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래도 제가 아들이라고 아버지는 밥과 계란을 일본간장을 넣고 비비셔서 조금 덜어 주시던 그 맛,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입술을 핥습니다. 또 모든 식구들이 아버지 상의 반찬들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몰라요. 아버지는 가끔 말씀하셨지요. 너 장가가면 너희 엄마처럼 네 마누라가 잘 챙겨줄 테니 기다려라 라고요. 그런데 요즘 상황이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나이 먹어가서 그런지 공연히 섭섭하고 노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공연히 식구들도 저를 우습게보고 따돌리는 것 같고, 무시하는 것 같아 가끔 기분도 우울 합니다. 글쎄 제 아내는 어찌된 영문인지 딸이나 저는 별로 안중에도 없고, 중학교 다니는 아들만 보면 우리아들, 우리아들 하면서 챙깁니다. 어쩌다 제가 불평을 하면 마치 데리고 들어온 자식처럼 싸고돌면서 “아니, 자기새끼 잘 먹여서 예쁘게 키워 주는데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지 무슨 불만이 많아”라고 한마디 합니다.
사실 그 말은 맞지요. 그런데 우리 마누라가 저보고 시집왔지, 그때는 없던 아들 보고 시집을 온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엄마가 하시던 것처럼 자기 남편인 저를 하늘같이 받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월 탓을 해봐도 정말 너무 억울합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나 몰래 어디 가서 웅변 교습을 받았나 어찌나 모두 말들을 잘하는지, 마누라하고는 제가 말을 반도 안했는데도 판정승으로 게임은 벌써 끝난 거예요. 그리고 우리 마누라는 전생에 솔개였는지, 제가 먹는 것도 채가서 아들에게만 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아버지가 사시던 시대도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쓴 웃음을 짓게 하는 내용이다.
가까운 친구 하나가 저녁 먹을 때 두 아들을 유난히 챙기면 남편이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다. “자기아들만 챙기지 말고 남의 아들(시어머니의 아들, 즉 남편)도 좀 챙깁시다”라고. 농담 속에 진담이 섞여있음을 느낄 수 있다.
5월은 어린이날, 그리고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 두 어깨에 제일 책임을 많이 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족들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남편님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겠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이 먹어도 마음은 항상 소년처럼 젊어서 자기도 많이 위해달라고 하는 말씀도 우리 아내들이 한번쯤 새겨들어야겠다.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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