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은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이다. 외무차관인 윤치호도 번역을 거들도록 하여 The Independent 라는 영어판도 한 페이지 만들었다. 서재필은 논설을 통해 엘리트를 가르치고 백성을 인도한다. 애국애족, 여성해방, 위생의 중요성, 도로와 철도의 필요성 등 개혁할 모든 분야에 대해 설파한다. 엘리트들이 그의 날카로운 주장에 새롭게 눈을 뜨고, 백성은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장에 감동한다.
왜 ‘조선신문’ 같은 다른 이름들을 두고 ‘독립신문’인가? 그는 국체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마음의 독립도 중요함을 역설한다. 천 년 이상을 소중화 사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선에서 의식의 타파 없이는 나라의 장래가 없다는 절실함에서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독립적 생각, 주체성이 부족한 것은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크게 변한 게 없다. 중국의 자리를 미국이 대체한 것만 다를 뿐이다. 큰 나라들에 낀 지정학적 이유인가, 타고난 국민성이 더 큰 이유인가.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한자를 섞어서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한글로만 써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단호히 배격한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사랑이요 자주성의 표명이다. 하는 말과 쓰는 글이 달라 수백 년을 백성은 무지했다. 말과 글 사이에 차이가 없어야 하겠다는 것은 영어를 배우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세종대왕의 뜻이 4백 년 후에야 펼쳐지는 모습이다. 한자를 가끔 섞어 쓰고 싶은 욕구는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일부 지식인들에게 잔존한다.
서재필은 또한 독립신문에서 한글의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시도한다. 영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 터이다. 과거에는 한글의 단어들을 모두 붙여 써놓아, 문장을 잘라서 쉽게 이해하기는커녕 호흡조차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물론 그 전에도 선교사들이 한글을 영어처럼 띄어쓰기는 하였지만, 공식적으로 신문에 모두 띄어쓰기를 한 것은 독립신문이 처음이다. 언문일치와 한글전용, 그것만으로도 서재필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깊고도 넓다.
신문과 별개로 유길준은 서재필에게 공개강연을 하도록 한다. 조선 최초의 공개 강연회다. 내무대신 명의로 고위관료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서재필이 ‘조선에게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 강연한다. 행사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조선 역사상 최초의 국기에 대한 경례다. 국가의 자주적 자세의 확립, 역사의 주체인 백성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발전을 위해 교육의 중요성과 민주주의식 토론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치안을 이유로 공개 강연회가 어려워지자 매주일 배재학당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계의 지리와 역사를 가르치고 정치학을 가르친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인권을 가르친다. 이승만, 안창호 등 학생들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그들에게 협성회를 만들어 학생들끼리 토론을 많이 하라고 가르친다. 이승만은 말한다, “영어를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배재학당에 들어갔는데 진짜로 배운 것은 서재필의 민주주의였다”고. 서재필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한국에 처음 수입한 셈이다.
서재필은 또한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조직한다. 독립협회는 리더 격인 사람들을 모은 일종의 리더십 양성을 위한 클럽이다. 배재학당 토론회의 연장선상에서 독립협회에서도 왕성한 토론이 벌어진다. 1897년 1월에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서대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뜬 모양이다. 누구에게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후에 북한에서도 주체를 상징하는 유사한 문을 만든다.
1896년 1천 명이던 독립협회 회원이 1898년에는 4천 명이 넘는다. 활동 내용도 점차 민중투쟁 등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다. 독립신문, 공개강연, 배재학당 강의, 독립협회 등 서재필의 활동은 한국 정신사에 있어서의 대변혁이었다. 그것은 사회혁명이요 문화혁명이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엘리트와 민중이 새롭게 눈을 뜬 사회 대개혁이다. <계속>
권태면
워싱턴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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