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70억에 가까운 인간들은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 태어나는가 라는 우연 하나 때문에 일생이 결정되다시피 된다. 소위 선진국들에 태어나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75세인데 비해 후진국 사람들은 40대 안팎이라는 냉혹한 통계만 보아도 그렇다. 또 언론, 종교,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을 보장받고 있는 제도 아래 사는 사람들과 장기 독재 정권 밑에서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가 비교도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국민의 연 평균 수입이 4만여 불 안팎의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과 500여 불도 안 되는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빈곤한 나라들에게는 소위 자연재해도 더 자주 들이닥치고 피해 또한 엄청난 경우가 흔하다. 꼭 1주일 전 버마, 또는 미얀마를 강타한 태풍 피해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사망자 수가 4천이라더니 점차로 늘어나 일부 보도에 의하면 10만 이상이란다. 그리고 집을 잃고 당장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 고생하는 이재민들의 수는 140만 내지 190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얀마는 1948년에 63년간의 영국 식민지 통치를 벗어나 독립이 되었다. 하지만 민간 정부 통치 10여년 만에 군부가 집권한 이래 가끔 네윈 등 군사 통치자가 민간복으로 갈아입는 위장술을 보이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군사 독재 아래 오늘날까지 이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민주주의 소리만 내놓아도 정치범이 되는 것은 당연한 공식이다. 버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의 딸 아웅산 수지 여사가 1988년 귀국해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왔으니까 그가 옥고 내지 가택연금 아래 있게 된 상황이 근 20년 계속되어왔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작년에만도 불교 승려들이 앞장선 민주화 요구 데모대들에게 무차별 발사를 해서 몇 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군부 독재자들은 민주화 요구세력을 외세의 앞잡이로 보기 때문에 미얀마의 독립과 자치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엔을 포함한 구미 각국의 인권단체들의 인권 개선 권고안들을 내정간섭쯤으로 일소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이클론 피해자들의 참상을 돕기 위한 유엔 산하기관들, 그리고 민간단체(NGO)들 및 미국 등 외국정부들의 원조 제의만 해도 그렇다. 마침 사이클론이 강타했을 무렵 인근 해역에 있던 미국 함대들이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원조물을 가져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태풍에 뒤이은 해일 때문에 간신히 목숨만 건진 어른들은 물론이고 신생아들을 포함한 어린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 뼈만 앙상하게 남고 마실 수 있는 안전식수가 없어서 생명이 경각에 달해있는 극한상황 아래서도 군부 독재자들이 평소 적대관계라고 보던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원조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원조제공을 하는 NGO 등의 구호요원들의 비자를 신속히 내주지 않아 국제기구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세계의 최빈국 10개 나라 중 하나라는 미얀마가 유엔 아동구호기금 등의 긴급 원조를 받아들이는 일에조차 늑장을 부리는 것이 세계 여론에 의해 지탄되자 독재정권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인근 나라들의 원조는 받아들인다지만 그나마 받자마자 군인들이 구호품 배부에 나서 생색을 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미얀마 정부가 받아들인 구호품들이란 게 바다에 물 한 방울 보태는 격으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원조를 받아들여 당장 죽어가는 이재민들을 살려야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미얀마의 독재자들은 원조를 받아들이는 경우 민주화 세력이 커져서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위태해질까 우려하기 때문인지 계속 원조의 선별적 선택 및 군대들에 의한 배부를 고집하고 있다. 미얀마 이재민들에게 그런 정부는 없느니 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더구나 사이클론이 오기 전에 라디오 방송을 통한 대피 경고가 전혀 없었던 것이 고의적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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