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5일자 한국일보는 “이제는 희망을 얘기 할래요”란 제목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한인여성인 김경해 씨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이 여성도 소위 말하는 그 흔한 국제결혼을 한 여성으로 많은 학대를 받아가면서 살아온, 어쩌면 현대 미국이민사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다.
한국동란으로 많은 한국여성들이 미국군인 혹은 군속들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여성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도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인사회에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우리의 눈과 귀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서 그러하지 많이 있다. 나는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나의 가슴을 두드리는 한 여인이 떠오르곤 한다,
1974년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저녁노을이 질 무렵 일본 동경의 하네다 공항에서 시애틀 행 노스웨스트 비행기로 갈아타고 하늘을 날았다. 비행기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를 거의 골라서 앉을 수가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스튜어디스가 영화 대사를 들을 수 있는 리시버를 팔기 시작했다. 하나에 2달러였다. 나는 창가의 자리에서 화면이 정면으로 보이는 중앙의 좌석으로 옮겨 리시버를 하나 샀다. 그런데 나의 바로 앞줄에 앉은 한국여인은 리시버를 사지 않고 그냥 화면만 쳐다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래서 시애틀까지 갈려면 지루할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시애틀이 가까이 오자 스튜어디스가 입국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국카드를 한참 쓰고 있는데 옆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앞에 앉아 있던 한국여자분이었다.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그녀는 “선생님, 이것 좀 적어 주시겠습니까?” 한다. 나는 그저 예, 예 하면서 그녀의 입국카드를 받아 들고서는 옆자리에 앉으라고 권유하였다. 나는 그녀의 입국카드를 다 적고 난 후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미네소타주 두루스까지 간다고 한다. “미네소타까지 갈려면 시애틀에서 한참을 가야하는데 누가 공항에 나오기로 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네, 남편이 전화로 공항에 나온다고 했어요” 한다. “왜 영화 리시버를 안 사셨습니까” 하고 묻자 “돈이 없어요. 10달러가 전부에요” 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쿵 하는 듯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국제결혼 여성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이 여인이 나도 모르게 나의 뇌리 속에서 화면으로 나타난다. “지금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하는 대사와 더불어.
지금 미국에 한인교포가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많은 한인들이 미국에 오는 데는 이들 여성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컸다. 그리고 이들은 1960-70년대 가난한 시절 한국의 가족들을 부양하는데 헌신의 노력을 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들을 외면한 채 한국인의 현대 이민사를 논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의 발자취는 크다. 그런데 지금 한인단체가, 특히 교계는 이들을 외면하고 해외선교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리고 외치고 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의 3대 의무중 하나인 선교가 꼭 해외선교이어야만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어두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여성과 국제입양아들을 찾아 밝은 햇빛 속으로 인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진 부채를 갚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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