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다. ‘벼’도 이제부터는 단단히 땅에 뿌리를 박고 이 가을 스시의 생명인 질 좋은 쌀을 만들기 위해 마음껏 햇살을 받아들일 때이고, 이른 봄 차고 어두운 바다 속을 헤쳐 나온 우리 스시바의 친숙한 몇 어종들은 이제 따뜻한 쪽에 서식처를 정하고 종족보존과 생존을 위해서 사주 경계를 단단히 펼 때이다.
지금의 이철은 Porgy, Sea Bass, Stripped Bass가 제 맛을 찾을 때고 특히 야리이까(창 오징어)가 맛있을 때다. 메인 주의 우니(성게)도 서서히 캘리포니아산 알이 굵은 놈으로 바뀌면서 여름 입맛을 돋우어 줄 것이고, 일본에서는 비록 담수어지만 여름 생선의 상징인 수박향도 은은한 은어가 제철을 맞을 것이다.
대저, 스시바에 앉아서 먹는 것과 테이블에 앉아 시켜 먹는 것과의 차이를 양복을 백화점에서 사 입는 것과 재단사한테서 맞춰 입는 것의 차이로 비유했다. ‘맞춤’이 좀 비싸겠지만 내 식성과 취향이 스시맨의 감각과 솜씨하고 잘 맞아 떨어진다면 훨씬 해피하지 않은가. 쓸쓸히 혼자 스시바를 찾은 ‘침묵’의 손님도 와사비의 톡 쏘는 신선하고 매운 향이 텅 빈 머리 속을 한 바퀴 휙 돌아 나오면 결국은 ‘대화’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철이면 스시 chef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메뉴에도 없는 ‘특선’을 풀향기 그윽한 새순이나 해초들이 곁들인 각가지 ‘스노모노’와 함께 먹는 즐거움도 있고, 밥맛 없을 때 참 오징어 내장랑으로 만든 ‘시오카라’를 밥에 얹어 먹는 맛도 스시바만의 즐거움인 것이다. 무엇보다 스시맨의 칼 솜씨를 눈 여겨 보면서 생선을 다루는 그의 마음가짐을 읽으면서 그가 빚는 ‘스시 예술’을 보는 즐거움이 그만인 것이다.
회(사시미)를 써는 노련한 chef는 칼날 길이 330mm의 ‘샤쿠이치’ 야나기바(횟칼이 버드나무 잎-야나기-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를 쓰는데, 이런 칼로 무게 있게 길게 베어내어야 생선살의 선이 분명하고 각이 또렷이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이 살들을 덧칠이 없는 수묵화처럼 단 한 번의 손댐으로 사시미 상(床)에 올리는데, 기본적으로는 산을 배경으로 단층별로 마을 혹은 집이 있고 나무와 숲이 있고 시내가 있고 바위가 있는 소박스런 동양미술의 구도이지만, chef의 흥취에 따라 계절감각을 충분히 살려주는 이상향의 작품이 손님을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상이 화려하고 꽉 차 보이는 것은 생선이 가진 고유의 화려한 자태와 칼이 만들어준 선과 각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스시 경연 대회에서 칼을 쓰는 자세와 작품이 갖는 상징성이 다 같이 중시되는 것은 칼을 다루는 자의 마음을 크게 보기 때문이란다. 오래전 대학에서 치공(齒工)을 연구하는 한 스시바 손님이 그랬다. 세라믹으로 저 칼을 만들면 쇠보다 훨씬 강하고 잘 들고 녹도 냄새도 없을 텐데, 어떻게 연마를 시키느냐가 문제라면서 틈만 나면 숯돌에다 칼을 가는 우리 스시맨을 보고 안타까워했었다. 세라믹 칼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듯도 한데… 과연 어떨지.
한국의 동해 앞바다는 성게가 값이 좋다고 종자를 너무 쏟아 부어 기존 생태계를 온통 밤송이 밭을 만들었다하고, 영덕 게는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씨알까지도 걱정인 모양이다. 이곳 Chesapeake Bay는 blue crab 보호를 위해 포획금지를 한다는데… 땅에다는 말뚝하나 못 박으면서 자기마을 앞바다라고 제 마당 부리듯 구는 ‘집단이기’가 바다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긴 여름, 우리 스시바도 입맛이 떨어져 찾아온 단골들을 위해 상큼한 소재의 메뉴를 준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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