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일본대사가 동해병기법안이 추진되는 버지니아주 주지사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낸 사실이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30일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 대사는 지난해 12월 26일 테리 맥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에게 동해병기법안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이것이 추진될 경우 버지니아 주에 투자한 일본 기업들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발송했다.
당초 한인사회는 겐이치로 일본대사가 지난 22일 맥컬리프 주지사를 만나 동해병기 법안을 반대하는 의사를 처음 전달한 것으로 파악했으나 편지의 존재는 최소한 한달여 전부터 일본 정부가 전방위적 공세를 펼쳤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주한인의 목소리(VoKA)의 피터 김 회장은 지난 28일 긴급 연락망을 통해 “맥컬리프 주지사 참모진이 소위원회 9명의 의원들을 모두 접촉, 동해병기법안을 부결시킬 것을 종용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맥컬리프 주지사는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한인사회에 동해병기 법안을 찬성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한인사회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바 있어 돌연한 반대로비가 의문을 자아낸게 사실이다.
그러나 외교적으로 협박이나 다름없는 단어들을 사용하며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친 일본대사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에서 겐이치로 대사는 의례적인 인사문구도 생략한 채 “일본해와 함께 동해를 병기하면 다음의 세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첫째, ‘일본해(Sea of Japan)’는 일본과 한반도사이의 바다를 지칭하는 공식적인 이름이며 일본의 팽창주의와 식민통치의 결과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이 쇄국정책을 펴던 19세기초부터 ‘일본해’ 이름이 쓰인 지도들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정부는 일본해를 유일한 지명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미 국무부는 단일 지명 원칙은 미정부의 오랜 원칙이라는 국무부가 밝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어 “둘째, 버지니아의회는 학교 학생들에게 정치를 개입시키고 있다. 학생들은 진실만을 배워야 하며 정치인들이 학생들에게 혼란을 줘서는 안된다”고 짐짓 훈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세째, 버지니아에 대한 일본의 친밀감이 저해될까 걱정된다. 일본의 버지니아주 투자는 지난 5년간 1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외국인 직접 투자액수에서 2번째로 큰 규모다. 약 250개 일본 업체들이 버지니아에 투자하고 있으며 지난 2012년 약 1만3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면서 “(중략) 동해 법안이 통과되면 일본과 버지니아간의 긍정적인 협조와 강한 경제적 유대 관계가 손상될까 두렵다”라고 말했다.
그가 편지에서 언급한 ‘걱정된다(worry)’, “두렵다”(fear)는 외교적으로 강력한 경고성 문구로 해석되고 있다. 외교전문가들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법안 통과시 투자 위축이나 일본기업의 철수를 통한 일자리 상실을 예고하는 협박성 멘트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편지에서 주장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해보다 동해와 한국해로 쓰인 고지도들이 훨씬 많다는 것과 식민지시대 ‘일본해’를 공식화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무부의 원칙 또한 2010년 국무성의 공식문서에 동해 병기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버지니아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하자는 법안의 목적이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이름이 서로 다르게 불린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정확히 알려준다는 점에서 ‘진실과 교육’의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결국 겐이치로 대사의 주지사 면담은 동해병기법안의 좌초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마치고 확실한 끝내기의 수순이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현재 대형로펌을 동원해 하원에 상정된 관련 법안의 부결을 위해 초강력 로비를 전개하고 있다.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해도 최근 상원을 통과한 법안과 조율을 한 후 주지사의 서명을 받아야 발효된다. 그러나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버린다. 결국 일본은 최후의 마지노선까지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셈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너무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주한인의목소리(VoKA 회장 피터김) 등 한인사회에 맡겨놓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외교’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반대로비를 하는데 ‘보이지 않는 외교’로 무얼 할 수 있느냐? 현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외교는 하나마나 외교”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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