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정서와 시대를 문학으로 깊이 있게 담아낸 존 스타인벡은 미국 동부의 헤밍웨이에 견줄 만큼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고향인 캘리포니아 살리나스를 중심 무대로 많은 작품을 썼으며, 그 중심지에 위치한 스타인벡 연구소는 그의 문학 세계를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연구소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스타인벡의 동상이 맞이한다. 오른손엔 메모가 적힌 노트를 들고 있고, 왼손은 무언가 설명하듯 들려 있다. 옆에는 그의 주요 작품 19권이 전시돼 있다. 투명 유리 뒤엔 그의 흘려 쓴 사인이 새겨지고, 그 아래로는 미국 대륙을 관통하는 ‘길의 어머니’ 루트 66 도로 표시가 바닥에 깔려 있다. 이는 ≪분노의 포도≫에서 묘사된 오클라호마 이주민들의 여정을 상징한다.
전시관 내부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대통령 자유훈장 수여 당시까지 다양한 사진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귀가 크고 눈매가 날카로워 ‘생쥐’라는 별명을 얻었던 어린 시절 모습은 그의 소설 제목과도 연결된다. 노벨상과 퓰리처상이 실제로 진열돼 있으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은 결국 재평가를 받았다.
살리나스는 세계 양상추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스타인벡은 그 노동의 현장을 작품에 생생하게 담아냈으며, 소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을 끈질기게 포착했다. ≪분노의 포도≫는 경제 대공황과 모래폭풍으로 터전을 잃은 오키(Okie)들의 고단한 이주를 다룬다. 이 소설에서 “먼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상징으로 등장하며, 희망을 찾아 서부로 향한다.
≪생쥐와 인간≫은 조지와 레니 두 인물을 통해 우정과 절망, 인간의 연민을 이야기한다. 전시관에는 이들이 입었던 작업복과 모자, 담요가 재현돼 있다. ≪에덴의 동쪽≫은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죄, 용서를 그린 대작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임스 딘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통조림 공장 골목≫은 실존 인물인 해양 생물학자 에드 리케츠를 모델로 한 ‘닥’의 이야기를 통해 소박한 공동체와 인간적 유대를 그렸다. 소설에 등장하는 ‘리 청’의 가게와 생물 연구소 건물도 전시장 안에 재현되어 있다.
또한 ≪찰리와 함께한 미국 여행≫에서는 애완견 찰리와 함께 한 1만 마일의 여정을 통해 미국 사회를 관찰하고 인간을 이해하려 했던 작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가 특별 주문한 GMC 트럭 ‘로시난테’ 내부도 전시돼 있다.
스타인벡은 감정을 중시하고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헤밍웨이가 개인의 고독을 썼다면 스타인벡은 가족과 인간 존엄을 이야기했다. 살리나스 시민들은 연구소가 위치한 이 자리를 ‘살리나스의 심장’이라 부르며, 그의 문학과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사람을 끌어낸다”는 그의 말처럼, 이곳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닌 문학과 삶이 만나는 공간이다. 그 진심 어린 시선은 관람객을 그의 시대와 작품 속 세계로 깊이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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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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