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현재로선 전국민 의료보험(ACA) 폐기시도는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심술궂은 트럼프 행정부가 ACA의 자체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몽니를 부릴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최근의 성과를 유지하기 원하는 민주당과 건강보험 커버리지 감소와 프리미엄 인상에 따른 대중의 예상되는 비난을 우려하는 공화당이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ACA 파괴에 제한을 가하려는 양당의 공동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의료보험 전투에서 진보주의자들이 대승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진보진영은 팩트(facts)를 끌어 모으고 우호 여론을 불러일으키며 소속 정치인들이 공화당의 공세를 뿌리치고 끝까지 버티도록 압박을 가하는 등 눈부신 수완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은 향후 어떤 행보를 취할까? 만약 의회와 백악관을 탈환한다면 민주당은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은 벌써부터 메디케어를 확대해 전국민의료보험을 실현한다는 그의 핵심 공약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단일보험제(single-payer)에 대한 지지여부를 차기 민주당 후보들을 평가하는 시금석으로 사용하려든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은 되치기에 나서야 한다. 오바마케어의 허점을 보완해가며 전국민건강보험을 고수하려는 확고한 결의를 진정한 진보주의자를 가리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일보험 시스템만이 전국민건강보험에 도달하는 유일한 통로인 것은 아니다: 단일보험 시스템 구축은 옹호론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어렵다: 이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중요한 과제가 수두룩하다.
전국민보험을 이해하는 키포인트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부유한 국가들이 전국민보험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이를 운용하고 있는가? 실제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방식이 사용된다.
선진국들의 헬스케어제도를 상호비교한 비당파기구인 코먼웰스 펀드의 최신 보고서를 살펴보자. 미국의 헬스케어 순위는 밑바닥이고 1위에서 3위는 영국, 호주와 네덜란드가 차지했다. 영국은 진정한 사회의료 보장제도를 갖고 있다: 정부가 국민건강서비스를 통해 직접 의료보험을 제공한다.
호주가 택한 단일보험제는 기본적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이며 메디케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제대로 된 오바마케어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네덜란드다: 개개인은 정부보조금의 도움으로 프리미엄이 적정수준으로 떨어진 민간보험사의 보험을 구입한다.
이같은 네덜란드의 의료보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ACA 역시 급진적인 아닌 점진적 개선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바마케어가 비록 불완전하기는 해도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주에서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 역시 ACA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추가 증거다. 현재 뉴요커의 단 5.4%만이 무보험자인 것을 아는가?
한편 전국민 메디케어가 아니라 오바마케어로 연결된 정치논리는 아직도 유효하다. 보험사들로 하여금 의료개혁을 받아들이도록 유인하는 것이 그리 어리석은 짓은 아니나 애초부터 보험업계를 구워 삶으려고 마련된 논리는 아니었다.
여전히 이론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바로 그 정치논리가 ACA를 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보험업계의 로비기구인 미건강보험플랜)과 블루실드가 개입해 공화당 플랜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고려사항은 1억 5,600만 명에 달하는 직장보험 가입자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직장보험에 만족한다. 단일보험제는 직장의료보험 커버리지를 빼앗는 것은 물론 새로운 세금까지 부과한다. 정치적으로 단일보험제를 띄우려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세금보다 많은 프리미엄을 절약할 수 있고 새로운 커버리지도 이전의 것 못지않다는 확신을 대중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팩트만 따져보면 맞는데 사람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과연 이것이 진보주의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자산을 사용하길 원하는 방법일까?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당연히 ACA의 대체 대신 개선을 강조할 것이다. 나라면 공영보험을 구입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결국 단일보험제로 귀결될 공공선택권(public option)의 일부 형식을 재도입하는 방안을 강력히 지지한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은 헬스케어에 그치지 말고 미국의 안전망에 뚫린 다른 허점들로 초점을 이동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를 다른 부유한 국가들의 제도와 비교해볼 때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은 우리가 어린이에게 너무도 소홀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국가들은 맞벌이 부모의 자녀들에게 정부의 재정보조를 받는 질 높은 데이케어서비스 혜택을 주는 동시에 전체 혹은 거의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 프리킨더가튼(pre-K)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물론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 부문에 대한 미국의 가정보조금 지출은 선진국 평균의 3분의1 수준으로 멕시코, 터키와 같다.
따라서 나라면 ACA의 완전폐기 대신 개선을 옹호하는 한편 차일드케어에 관한 새로운 진보주의적 전선을 열 것이다.
나는 단일보험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새롭게 시작한다면 내가 지지할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거기까지 가기란 대단히 어렵다. 아마도 우리는 소박하고 점진적인 접근 이상의 것을 달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상주의자라 하더라도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전국민 메디케어를 그 명단의 맨 위에 올려놓지는 못할 것이다.
<
폴 크루그먼 칼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