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자연의 경이와 위대함을 느끼고 교제하는 시간들
모험의 시작, 벅찬 설렘을 안고
미국의 Wild West를 대표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떠나는 10박 11일의 모험의 날이 다가왔다. 거칠고 황량한 땅에 새겨진 장구한 시간의 흔적, 동부의 좁은 시야를 넘어선 거대한 또 다른 Planet, Nevada, Utah, Arizona를 넘나드는 대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볼티모어에서 5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라스베이거스! 공항을 나서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환락의 도시’라는 명성 그대로, 공항 안부터 화려한 슬롯머신과 번쩍이는 조명이 나를 반긴다. 렌터카를 픽업해 라스베이거스의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The Paris Hotel에 도착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멈춰선 시간
7월 31일 오전 10시, 자이언 캐니언을 향해 출발했다. 시속 80마일로 달리는 렌터카는 활기 넘치는 도시를 순식간에 벗어났다. 창밖으로는 삭막하지만 이국적인 사막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공사 하나가 양방향 수십 마일을 꽉 막아 버려 두 시간 반이면 충분할 거리를 무려 일곱 시간이나 걸려 자이언 캐니언 입구에 도착한 바람에 오후에 한두 곳을 하이킹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아 나섰다. 예약 없이 현지에서 숙소를 구하려니 가격이 상상 이상이다. 라스베이거스의 5성급 파리스 호텔이 100달러 남짓이었는데, 이곳의 허름한 2성급 모텔도 400달러를 달라고 한다. 차에서 잘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30분 떨어진 타운에서 비교적 저렴한 모텔을 찾아 이틀째 밤을 보낸다.
천사의 발걸음, 악마의 공포
2025년 8월 1일, 새벽의 신비로운 풍경을 뒤로하고 드디어 자이언 캐니언의 하이라이트, 엔젤스 랜딩(Angel’s Landing) 등반, 셔틀버스 여섯 번째 정류장인 그로토(Grotto)에 내리니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몇몇 등반객 그룹을 맞이한다.
한동안 버진 강가를 따라 걷던 트레일은 이내 가파른 오르막으로 바뀌며 거대한 암벽들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깎아지른 듯한 붉은 바위 절벽과 그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버진 강(Virgin River)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연신 쏟아지는 땀방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과연 천사들이 내려왔다는 이곳의 정상은 어떤 모습일까’, 타박타박 황토 먼지를 일으키며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두 시간 남짓 올랐을까. 마침내 마지막 구간인 ‘더 체인(The Chain)’에 도착했다. 가파른 암벽 난간을 쇠사슬 하나에 의지해 기어오르는 코스는 극한의 고소공포증을 유발한다. 한 발짝만 헛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함에 도무지 서있기조차 무섭기만 하다. 옆으로는 수직으로 깎아 잘린 끝없는 절벽이고, 그 밑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득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이 이 구간 앞에서 포기하고 돌아섰고, 나 또한 백여미터를 더 못가고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실제로 이곳은 등반 사고가 잦아 공원 측에서 등반객 수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매년 추첨을 통해 소수의 인원에게만 등반 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이 천사의 발걸음을 허락받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반대쪽의 정상에 섰을 때, 그 상쾌함과 장대한 풍경은 큰 성취감과 환희를 안겨 줄 뿐이다. 사방이 탁 트인 360°파노라마 뷰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 거대한 붉은 바위산들이 겹겹이 쌓여 거대한 성채를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마치 실처럼 가늘게 보인다. 비록 악마의 공포를 극복하는 못했지만, 정상에서 만난 풍경은 그 모든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7.65마일, 네 시간여의 트레일. 엔젤스 랜딩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트레킹이 아니다. 흙내음을 맡고,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을 몸으로 느끼고,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감을 느끼며, 자연의 위대하고 경이로움을 느끼고 교제하는, 그런 시간과 공간에 머물다 오는 것이다.
협곡의 물길을 걷다
엔젤스 랜딩의 정상에서 맛본 환희도 잠시, 오전 7시부터 시작된 험난한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니 벌써 정오가 훌쩍 넘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과 지친 다리를 이끌고 점심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쉴 틈은 없다. 오늘 계획했던 또 다른 하이라이트, 내로우스(The Narrows) 트레킹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후 1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기온은 105°F(약 40.5°C)에 육박했다.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내로우스 입구로 향하고 있다. 내로우스는 일반적인 트레일과 달리, 버진 강(Virgin River)의 물길을 따라 걷는 독특한 코스였다. 발목부터 허리까지 차오르는 강물을 헤치고 걸어야 하기에, 신발과 지팡이는 필수 장비다.
강물에 첫발을 담그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순식간에 식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좁은 협곡 사이로 흐르는 강물 위를 걷는 경험은 어린 시절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냇가를 건너는 기분이다. 양옆으로는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붉은 바위 절벽이 솟아 있고,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마치 거인의 세계에 들어선 난쟁이일 뿐이다. 햇빛이 협곡 깊은 곳까지 스며들지 못해 한낮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발아래 흐르는 강물 소리, 그리고 고요한 협곡이 만들어내는 울림만이 주변을 가득 채운다.
왕복 3마일(약 4.8km) 코스를 걷는 데 4시간이 걸렸다. 물살에 흔들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젖은 신발과 옷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이 특별한 순간을 즐긴다. 내로우스 트레킹은 단순히 걷는 행위를 넘어, 자연과 온몸으로 소통하는 특별한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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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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