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난데일에 소재한 한식당 ‘펠리스’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 김명회씨.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몇 번씩이나 튀어나왔다. 아내와 미국에 와 살고 있는 것도 감사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도 감사하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렇다. 김씨는 “미국에서 살지만 한인들이 역시 인정이 많아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중국 연변의 훈춘시에서 태어나 지난 2000년 부인 천애순씨와 미국에 와 영주권을 얻고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살아가는 김(38)씨의 얘기는 평범하게 들리면서도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의 매력은 ‘희망’과 ‘꿈’에서 오는 듯했다.
“상해의 어느 제조회사에서 일을 할 때입니다. 디즈니월드 같은 미국회사와 유럽 회사의 주문을 받아 장난감과 완구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엄청 신발이 큰 걸 보고 깜짝 놀랐지요. 중국에까지 와서 상품들을 대량 사가는 걸 보고 미국은 참 대단한 나라구나 생각했는데 와보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신발이 크니 덩치도 크고, 트럭도 크고 집도 크고 다 크더라구요.”
2000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전 해에 도미한 사촌형님의 도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기회의 나라에서 새로운 세계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큰 동력이었다. 1998년 한국 무역회사 범양상선에서 일할 당시 이틀 정도 LA에 들렀던 경험은 더욱 그의 결심을 굳혔다.
“뉴욕 맨하탄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다른 일도 생각해 봤지만 요리사가 되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형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직업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미국인들을 자주 대화할 기회가 없고 영어를 잘 배우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사실 그게 가장 큰 불만이다. 중국어에 능통하고 적지 않은 직장 경력에 미국 생활도 잘 적응했는데 영어 소통이 아직도 불편하니 한계가 많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는 DMV에 혼자 갔다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결국 다시 통역을 대동해야 했던 걸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최근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출석 교회(평화장로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미군 요리사로 취직하는 길을 적극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영어도 배우고 경력도 쌓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그런지 이력서를 한 번 내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아직 회신이 없습니다만... 어떤 대답이 오든 상관없어요. 어떻게든 영어를 배울 겁니다.”
미국에 살면서 언어 소통이 어려우면 사업이나 대인관계에서 불이익이 크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영어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영어를 배워서 보다 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목표한 만큼 돈을 벌게 된다면 해변에 예쁜 식당을 마련하고 싶다. 그것도 주말에만 운영되는 식당을.
“많은 꿈들이 있었는데 솔직히 그중에 포기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이 그래왔듯 계속 도전할 겁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나라 미국에서 뭐가 걱정인가요? 다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게으르지 않으면 됩니다. 불평하지 말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면 아메리칸 드림은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병한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