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영웅들’ 가족과 감격의 포옹
극적 재회의 순간
한 명씩 나올 때마다
뜨거운 환호성 메아리
“인간승리”세계 지켜봐
지하에 매몰된 채 구조의 손길을 손꼽아 기다려온 칠레 광부들이 매몰 69일 만인 13일 속속 세상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칠레는 물론 미국, 호주, 영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은 TV 생중계를 통해 세기적인 광부 구조 ‘리얼리티 드라마’를 실황중계했고, 그들의 땅속 삶을 유튜브 등을 통해 지켜봐온 세계인들은 광부 한명 한명이 작은 캡슐 속에서 어둠의 지하터널을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마다 환호하고 감격했다.
칠레 당국은 전날 오후10시께부터 매몰광부 33명에 대한 구조작업에 착수한지 하루만인 이날 밤 구조작업을 모두 완료했다.
구조작업은 ‘피닉스’(불사조)라고 이름지은 작은 캡슐에 구조대원이 타고 700m 지하로 내려가 매몰현장에서 광부를 한명 씩 데리고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캡슐의 통로인 25인치 크기의 지하터널이 붕괴되는 것을 우려해 구조작업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캡슐은 초당 0.7미티로 끌어올려지며 유사시에는 초당 3미터의 속도로 상승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통로를 수차로 오르내리면서 생기는 캡슐의 마모와 고장을 우려해 2대의 또다른 캡슐이 대기했다.
칠레 당국은 먼저 전날 밤 두 차례의 캡슐 실험운행을 마친 뒤 구조대원을 태운 캡슐을 광부들이 갇혀있는 산호세 광산 갱도로 내려보내 약 50분만인 13일 0시11분께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를 처음으로 구조했다.
이후 약 1시간 간격으로 마리오 세풀베다 에스피나(40)와 후안 안드레스 이야네(52), 볼리비아 국적의 카를로스 마마니(23), 최연소자인 지미 산체스(19) 등의 순서로 잇따라 세상의 빛을 봤다.
가장 먼저 구출된 아발로스는 갱도에서 지상까지 약 16분간 캡슐을 타고 올라온 뒤 두달여의 지하 생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캡슐에서 스스로 걸어나왔다. 아발로스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울음보를 터뜨린 7살난 아들과 연방 눈물을 훔쳐내고 있던 아내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현장에 직접 나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첫 생환자인 아발로스를 따뜻하게 포옹하고, 격려했다.
주변에서 구조대원들은 “치치치 레레 레”라는 구호를 외치며 매몰광부의 생환을 ‘범국가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감격의 응원을 보냈다.
두 번째로 구출된 에스피나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큰 목소리로 자신의 귀환을 알렸고, “‘지하 감옥’에서 바위 조각을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 볼리비아 국적자인 마마니는 양쪽 집게 손가락을 티셔츠 앞에 그려진 칠레 국기에 대고 “고마워요 칠레”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생환 광부들을 맞은 피녜라 대통령은 “칠레 국민은 구조 작업에 온 힘을 기울였다. 오늘은 칠레 국민과 전 세계가 영원히 잊지 못할 멋진 밤이다”라며 기쁨을 나타냈다.
구조현장에 모여든 매몰 광부들의 가족 및 친척들이 13일 광부들이 한명씩 구조 캡슐에 실려 지상으로 올라올 때마다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AP)
구조 이모저모
‘감동의 드라마’ 칠레가 하나로 뭉쳐
◎…한편의 기적같은 드라마가 칠레 국민을 또한번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13일 세계 각국 언론은 69일만에 이뤄진 33명의 칠레 광부 구조작업 현장에 차려진 ‘희망 캠프’의 환호 분위기를 전하면서 “산 호세 드라마가 빈부격차 등으로 갈라져 있던 칠레를 단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칠레는 지난 2월 말 발생한 강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상 5번째로 큰 규모였던 강진은 500여명의 사망자와 함께 3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생체 모니터로 광부 상황 체크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광부들의 몸 상태는 캡슐에 부착된 소형 비디오 카메라, 쌍방향 소통수단, 광부들의 배에 부착하는 생체 모니터 등을 통해 실시간 점검됐다. 또 광부들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비,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한편 산소마스크, 혈전 방지를 위한 특수 양말, 스웨터 등을 착용한 채 지상으로 나왔다. 구출되는 광부들은 시력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구조된 광부는 앰뷸런스편으로 수백m 떨어진 간이 진료시설에서 간단한 검진을 받은 뒤 헬기를 이용해 코피아포의 병원으로 이송돼 48시간 동안 정식 진료를 받았다.
각국 취재진 2,000명 몰려
◎…현장에는 2,000명 이상의 내외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지만 전 구조과정에 대한 취재는 정부 측 사진사와 칠레 국영 TV에만 허용되고 있다. 칠레 국영 TV는 돌발 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비, 30초 이상 시차를 두고 구조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으며, CNN, BBC를 포함한 전 세계 주요 방송이 이 화면을 받아 중계했다.
시민들 “치치치 레레레” 연호
◎…코피아포 시내 아르마스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도 100여 명의 시민들이 나와 구조 중계방송을 지켜봤다. 이들은 구조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마다 ‘치치치 레레레’를 연호하며 기쁨을 나눴다.
오바마 “전세계 감동” 축하
◎…칠레 매몰 광부 구조 모습이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13일 세계 주요 정상들의 축하와 격려가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칠레인들의 단합과 결의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면서 광산 붕괴사고와 구출 과정에서 전 세계인들이 보여준 호의가 구조 활동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하 700m에도 희망은 살아 있었다
땅속 69일 어떻게 버텼나
이틀에 쿠키 반 조각·우유 반 컵 17일 연명
생존확인 뒤 음식물·오락거리 등 제공 받아
지난 8월5일 발생한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 붕괴사고로 13일까지 69일간 지하 700m에서 매몰돼 있던 광부 33명에 대한 구조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이들이 버텨낸 그간의 암흑 생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부들 생존을 건 ‘다이어트’
매몰된지 17일 뒤 생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광부들은 작업반장인 루이스 우르주아(54)의 지도 아래 48시간마다 한번씩 스푼 2개 분량의 참치와 쿠키 반 조각, 우유 반 컵으로 버텨야 했다.
이들의 생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 매몰 지점까지 뚫린 지름 10㎝ 크기의 작은 통로를 통해 수프, 의약품 등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광부들은 서서히 고기와 쌀 등으로 이뤄진 하루 2,200칼로리로 열량이 제한된 식단에 맞춰 음식물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한 통로가 지름 66㎝에 불과해 과도하게 체중이 불어날 경우 구조가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광부들은 매몰된 터널 인근에 설치한 간이 변소 시설을 이용했고 수도관을 설치해 음용수를 공급 받았다.
▲지상과의 화상통화
지난 8월22일 구조대원들이 생존자 확인을 위해 지하 깊이 박은 드릴을 두드려 생존 사실을 알린 광부들은 이후 작은 구멍을 통해 광섬유 전선을 내려받아 지상과 전화 통화는 물론 화상 통화도 하게 됐다.
의료진들은 구멍을 통해 생체측정 벨트를 내려보내 광부들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하고 호흡, 체온, 혈압 등 활력징후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
▲지하 700m에서의 일상은
광부들은 지상에 생존 사실을 알린 직후부터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와 오후 한차례 다과 시간을 갖는 등 규칙적인 식사 스케줄을 짰다.
또 500와트 전선을 내려받아 지상으로 귀환했을 때의 신속한 적응을 돕기 위해 낮 시간대에는 불을 켜놓고 밤 시간대에는 소등해 지상에서의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구조 과정에서 좁은 통로를 통해 끌어 올려지는 동안 최장 1시간을 견뎌야 하는 만큼 전문가들이 특수 고안한 운동 계획에 따라 광부들 모두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체력과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는데 주력했다.
최근 몇 주 전부터는 구조를 위한 통로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매몰된 터널 바닥에 떨어지는 잔해들을 치우는 작업에도 동참했다.
▲광부들에 아이팟ㆍ성경 제공
매몰된 광부들 가운데 일부는 축구광이었고 1명은 프로 축구선수 출신이어서 이들은 칠레와 우크라이나의 친선 경기를 작은 프로젝터를 통해 관람했다.
또 펠레, 마라도나 등 과거 인기 축구 선수들의 경기 동영상을 즐기고 한쪽 구석에 마련된 `카지노’에서 카드 게임이나 도미노, 주사위 게임 등을 즐기며 불안감을 떨쳐냈으며 지상의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위안을 얻었다.
최근에는 일간지를 받아보며 지상에서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파악하기 시작했고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제공한 최신형 아이팟, 성경책,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직접 보낸 묵주 등을 받았다.
광부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담배와 주류 등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흡연자들은 니코틴 패치나 니코틴 껌에 의존해야 했고 주류 반입은 안전을 고려해 허용되지 않았다.
광부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모은 선물은 고화질 캠코더였는데 이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생활을 지상에 전하고 광부들이 가장 즐겨 들었던 농담들을 모아 촬영한 8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지상에 올려 보내기도 했다.
‘규율반장’ 리더십이 기적 만들어
‘마지막 구출광부’ 현장감독 우르수아
지난 8월 5일 저녁 8시쯤 터널 붕괴로 지하 700m(후에 구조 대기장소인 지하 622m 지점으로 이동)의 갱도에 갇혔던 광부들은 사고 17일 후 지상과 연락이 닿기 전까진 살아 돌아가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 기간 광부들을 지탱해준 것은 현장 감독(작업 조장) 루이스 우르수아(54)의 지휘하에 결속된 강한 조직력이었다.
생존자들은 철저히 우르수아의 통제에 따랐다. 터널 붕괴 후 매몰된 것을 직감한 우르수아는 광부들을 모아 상황을 설명하고, 생존을 위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식량 배급량을 책정해 48시간마다 과자 반 조각, 참치통조림 두 숟가락, 우유 반 컵을 배급했다. 간호사 출신 광부에게 건강 체크,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잘 내는 광부에게 오락을 맡기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기록 담당 광부에겐 하루하루 광부들의 상태와 일상에 대해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항상 희망과 유머를 잃지 말자고 독려했다.
하이메 마날리치 칠레 보건장관은 지난달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규율과 위계질서가 군대만큼 엄격하다”며 “오랜 경험과 리더십을 가진 우르수아가 광부들을 잘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33인은 갱도 대피소에 있던 광산용 트럭 9대 안에서 잠을 잤다. 2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혹시 모를 추가 붕괴에 대비했다. 붕괴 현장 근처에 임시 화장실을 만들어 배변을 해결했고 갱도 내 작은 지하수 폭포에서 샤워도 했다. 첫 17일 동안 이들의 체중은 약 8~9㎏ 줄었다.
8월 22일 기적적으로 지상과 연락이 닿았다. 구조대는 지름 13㎝의 구멍을 뚫어 간이변기와 책, 항우울제, 가족의 편지를 제일 먼저 내려보냈으며 이어 식량과 물을 공급했다. 다음으로 조명과 통신기기, 정신건강을 위한 카드게임·주사위·소형 비디오재생기 등을 내려보냈다. ‘비둘기’라는 별명이 붙은 지름 12㎝ 크기의 금속캡슐이 사용됐다.
우르수아는 구조대의 조언에 따라 광부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일정표를 꾸렸다. 아침 7시에 기상해 아침식사와 샤워를 했다. 3개 조를 나눠 오전에는 갱도의 공기와 붕괴 상태를 체크하고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등 각각 임무를 수행했다. 정오에 점심 식사 후 전체회의를 열고 기도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후에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음악을 들었고 지상에서 보내준 카드, 도미노 게임을 했다. 의료담당의 지시에 따라 간단한 신체검사와 약 복용을 마치고 밤 10시 정각에 취침했다.
칠레 광산 매몰자 중 갱도에 끝까지 남아 있던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왼쪽)가 13일 마지막으로 캠슐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오른쪽)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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