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 처녀의 공이 너무 크고 갸륵하여 수덕사라 불리는 사찰. 대사 원효도 힘을 보태어 그 웅장함을 한층 더해주는 운치 있는 곳이 아닌가?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그렇게도 아름다웠다는 수덕 아씨가 걸어 나올듯한 느낌. 여기에 은은히 들리는 목탁 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돌아오니 참으로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 곳이 이 곳이구나 했다. 백제의 혼이 담겨있는 대웅전은 그 웅장함이 세인의 마음을 눌러주고 있으며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 뜻은 알 수 없으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백팔염주 목에 걸고 백팔번뇌는 가슴에 안고, 두들겨대는 목탁소리는 깊은 산속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인생의 무상 또 한 번 느껴지는구나.
백팔 번뇌 속에는 천륜도 저버려야한다는 구절이라도 있는지? 핏덩이를 바다 건너에 두고 온지 십삼 년 만에 찾아와 엄마라 부르는데 냉정하게도 스님이라 부르라 했던 엄마의 정은 어디에 두고 목탁만 두드리고 앉아 있을까? 종교라는 미명 아래 이렇게 천륜마저 무자비하게 놓아야할 것이라면 백팔번뇌 중 천륜까지 끊고 무아지경에서 사랑을 외친다면 너무나 잔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가 1920년대 초기에 ‘N’ 여사와 함께 한국 여자의 자유를, 특히 남성으로부터 해방을 외치던 사람이요, 시인이요, 승려가 된 현실을 초월한 한 시대의 여성 지도자로써 존경하고 있었기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와 함께 찾아가 면담 요청을 한 일이 있었다. 며칠을 묵으면서 몇 번이고 요청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정말 서운하고 아까운 시간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애숭이라서 면담도 안 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되겠지 생각했다.
‘춘원’이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그 이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은 뜻이 있는듯한 이름이다. 한 남자만을 사랑하기엔 마음이 너무나 넓었나? 몇 사람만을 사랑하기엔 너무나 풍성한 가슴이었기에 만인을 사랑해 백팔번뇌 저버리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수덕 여인 머물던 곳에 자리를 잡으셨나? 개신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는 그는 ‘여자는 남자를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또한 장식품도 아니다’라고 절규했으며 그의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인 ‘N’ 여사는 ‘시험결혼과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다‘라는 글을 투고하여 여성 권력 신장을 주장했던 최초의 여성이 아니었던가?
불란서의 ‘사강’이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세계 여성을 대변하여 떠들썩하게 하기 전에 한국에서는 ‘N’ 여사가 “콩밥이든 보리밥이든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한국 여성의 세계적인 우월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다.
남보다 한발 앞서 간다는 것,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남보다 좀 더 멀리 보았기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을 백팔염주에 모아 대자대비를 외치시던 스님. 종교가 먼저였나, 인간관계가 먼저였나? 아무 말 없이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흔적만을 남기고 앞서 가게한 수덕사가 원망스럽다.
그의 글을 쓰는 펜마저 꺾어버린 수덕사!. 수덕 여인의 땀이 배어있고 원효대사의 발자국이 보이는 듯하며 그 위에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져 거름이 되었으니 그 이름 영원하리라.
주인 없는 빈 집을 돌아보듯 견성암, 금설대, 환희대, 정혜사를 돌아보노라니 정혜 총각이 수덕 처녀를 맞는 그림까지 머리에 그려보게 된다.
가랑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어떤 것은 사람의 발에 밟히고 어떤 것은 고이고이 쌓인 채 다른 나무들의 좋은 비료가 되어 봄이 되면 다시 아름다운 하나의 나뭇잎이 되겠지? 은은히, 그러면서도 때에 따라 슬프게도, 즐겁게도, 잔인하게도, 깊게도 들리는 염불소리를 듣노라니 수덕사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한국 ‘조선문학’
신인 수필가 당선작>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