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출신 샘 한씨
입양아 출신 60대 한인이 병마와 싸우며 수년째 북한 고아들을 돕고 있는 스토리가 AP등 주류 언론에 소개돼 연말에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북한, 캄보디아, 탄자니아 등 극빈국 고아들을 위한 비영리재단 한-스나이더 국제 어린이재단(Han-Schnider International Children’s Foundation)을 이끌고 있는 샘 한(65)씨.
“지구상의 수많은 고아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이야기”라는 한씨는 현재 골수암의 병마와 싸우면서도 고아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한씨는 6.25 전쟁 통에 피난길에 올랐다 부모님과 생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홀로 남은 6세 어린이에게 세상은 버거운 상대였다. 마을을 돌며 음식을 구걸해 연명하던 한씨는 간이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2세 때 서울로 올라왔다.
평소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한씨는 무작정 서울 시내의 한 병원을 찾았다. 여기서 인생의 은인인 아더 스나이더 교수를 만나게 된다. 서울대학교 개교를 위해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파견됐던 스나이더 교수는 4년간 한씨를 지켜본 후 입양을 결정하고 한씨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도미 후 스나이더 교수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을 마친 한씨는 화학회사인 듀폰의 유럽지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몇 년 후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벤처회사를 창업해 10여년 만에 수백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사업가로 성공한 한씨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고아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2년 말기 골수암 판정을 받으면서 부터였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치자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한씨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패사디나에 살고 있는 양여동생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한-스나이더 국제 어린이 재단을 설립했다.
한씨는 “암선고는 새로운 인생을 찾게 해 준 고마운 계기였다”며 “지금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약이나 치료가 아니고 고아들을 돕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스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은 2009년 3만4,000달러를 모금해 북한 고아들에게 14만4,000개의 음식 패키지를 보냈다. 또한 한씨는 북한 고아들의 미국 입양 합법화를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있다. 재단 홈페이지 http://www.han-schnider.org
<심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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