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상엽 / 벤츠-이일환 / 도요타-김진원
GM의 카메로, 머세데스 벤츠의 F800, 도요타의 FJ 크루저. 최근 수년 사이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화제의 자동차들이다.
카메로는 위기에 빠진 GM을 구해낸 효자 모델, F800은 벤츠의 미래를 보여주는 청사진, FJ 크루저는 ‘실용’의 도요타를 ‘디자인’의 도요타로 탈바꿈시킨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 자동차들은 모두 한인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6일 세계 자동차 업계를 이끌고 있는 한인 디자이너 3명을 이들의 모교인 아트센터 칼리지 패사디나(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에서 만났다.
폭스바겐 그룹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이상엽(41)씨, 머세데스 벤츠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일환(37)씨, 도요타 캘티 디자인 리서치 프로젝트 수석 디자이너 김진원(33)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왼쪽부터> 벤츠의 F800, 도요타 FJ크루저, 폭스바겐 골프 GTI.
자동차에 대한 열정·끈기 성공의 열쇠
후배들에겐 편애 대신 더 엄격히
같은 프랫폼 다른 디자인 한국차 강점
▲한인 디자이너 삼총사, 아트센터 K-TEAM으로 통하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수석 디자이너들이지만 아트센터 학창시절에는 그저 자동차가 좋아서 공부하는 꿈 많은 청년들이었다.
맏형인 이상엽씨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다닌 이들을 지칭하는 별명은 K-TEAM. 개성이 뚜렷한 아트센터 학풍에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한인 학생들의 모습은 타민족 학생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상엽씨는 “기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K-TEAM의 진가가 발휘됐다”며 “선·후배들의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자기 일처럼 챙기면서 오히려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일환씨도 “기말 프로젝트 기간에는 한인 학생들의 작업실은 마치 자동차 모형 공장과 같았다”며 “한인 학생들 특유의 끈끈한 선후배 사랑과 부지런함이 학교 안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인 디자이너에게 더욱 엄격한 한인 디자이너들
한인 디자이너 3총사들은 현재 각 자동차사의 디렉터급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향후 회사가 지향해야 할 디자인 컨셉을 이끄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타 디자이너들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후배 한인 디자이너들에게 큰 힘이 되겠다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한인이기에 한인 디자이너들에게 더욱 엄격하다는 것.
이일환씨는 “디자인 스케치를 볼 때는 누가 그린 것인지 이름도 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실력중심으로 평가한다”며 “한인 후배들에게 기회를 더 준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냉혹하게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엽씨도 “여러 명의 한인 후배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그늘을 쳐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철저히 자신의 실력으로 살아 남아야 하는 곳이 자동차 디자인 업계”라고 강조했다.
김진원씨는 “내가 거쳐 온 길을 되돌아보면 언젠가 한번 찾아올 기회를 꾸준히 준비한 것이 성공을 가져온 것 같다”고 말하고 “후배들이 기다림 끝에 얻는 성공의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성공하고 싶다면 이들처럼
이들로부터 전해들은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세계는 그리 낭만적이지 못했다. 많지 않은 연봉에 잦은 출장과 야근,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부담과 1년 365일 계속되는 경쟁은 겉에서 보이는 화려한 디자이너의 모습과는 상반됐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느껴진 자신의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이러한 열정이 그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허락한 것이다.
이들은 성공의 열쇠로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꼽았다.
이일환씨는 “벤츠 최고 경영진들과 텍스트 메시지로 신차의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이따금 꿈을 이뤄낸 자신이 대견한 느낌이 든다”며 “학교 졸업 후 벤츠에 입사해 디자이너로 일하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끔 경력이 일천한 후배들이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기회는 재촉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준비할 때 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엽씨는 “자동차 디자인은 첫째도 열정, 둘째도 열정, 셋째도 열정”이라고 말하고 “자동차를 사랑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은 반드시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
자동차 업계의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평가가 시작됐다. 이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을 이미 세계 정상급의 위치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상엽씨는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현대, 기아차는 주류 자동차 회사들에게 경쟁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하지만 지금은 현대, 기아차의 신차가 나오면 폭스바겐을 비롯해 모든 주류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팀에서 면밀히 분석에 들어갈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현대·기아차의 장점으로 같은 플랫폼을 쓰면서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브랜드 전략을 꼽았다. 이씨는 “옵티마와 쏘나타는 디자인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차지만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는 같은 차”라고 말하고 “같은 플랫폼으로 서로 다른 디자인의 차를 생산하는 것은 디자인과 생산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뛰어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김진원씨는 현대·기아차의 패밀리룩 도입을 높게 평가했다. “요즘 기아차나 현대차의 신차들을 보면 오히려 주류 자동차 회사들을 압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특히 중구난방식의 디자인이 아닌 패밀리룩을 기초로 한 체계적인 디자인이 정립된 것이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만큼 도전도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일환씨는 “최근 수년 사이 현대, 기아차가 보여준 디자인 리빌딩 작업은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하지만 성공이 큰 만큼 차기 디자인에 더욱 큰 부담이 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민규 기자>
왼쪽부터‘머세데스 벤츠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 이일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폭스바겐 그룹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 이상엽 수석 디자이너, ‘도요타 캘티 디자인 리서치’ 김진원 프로젝트 수석 디자이너가 아트센터 교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왕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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