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드림 일군 ‘드림웍스’ 공동창업주 스필버그, 카젠버그, 게펜
천재감독 스티븐 스필버그(64)와 영화흥행의 마법사 제프리 카젠버그(60), 미 대중음악계의 거물 프로듀서 데이비드 게펜(67). 1994년 설립된 영화사 드림웍스는 그 출발 때부터, 헐리우드 거물들의 의기투합이란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꿈의 공장’이란 이름처럼, 헐리우드 드림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억만장자 순위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부자들이다. 특히 게펜은 지난해 재산 51억달러로 미 엔터테인먼트업계 최고 갑부이면서 전세계 154번째 부자로 집계됐고, 스필버그도 재산이 30억달러에 달하며 세계 부호 300위권에 올랐다.
드림웍스로 뭉치기까지
94년은 스필버그가 영화 ‘쉰들러리스트’로 생애 첫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해. 카젠버그는 당시 디즈니 회장 마이클 아이스너와의 불화로 10년간 몸담았던 디즈니에서 뛰쳐나온 직후였다. 드림웍스 창업은 스필버그와 카젠버그가 먼저 의기투합하고, 카젠버그가 오랜 조력자였던 게펜을 끌어들이면서 이뤄졌다. 게펜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주 폴 앨런과 CJ그룹의 투자를 유치, 드림웍스의 재정적 기반을 다졌다.
유대계 혈통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성향, 그리고 영화 등의 접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까지 3명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스필버그는 이미 10대 때부터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열두살 때 벌써 8㎜단편영화를 만들었고, 16세때 단돈 500달러의 저예산으로 완성한 140분짜리 SF영화 ‘불빛’은 훗날 ‘미지와의 조우’의 모티프가 됐다.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지만 컴퓨터엔지니어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뉴저지 아리조나 등으로 옮겨다녔는데, 이때 밤하늘을 관찰하거나 디즈니영화에 열중한 게 결국엔 SF영화 창작의 큰 자산이 됐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대에 다니면서 그는 유니버설스튜디오에 인턴사원으로도 일했는데, 68년 만든 첫 35㎜영화 ‘엠블린’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유니버설과 TV영화감독 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스필버그는 오로지 영화에만 인생을 걸었다. 심지어 영화를 찍지 않을 때 즐기는 취미라는 게 주말 내내 영화 몰아보기라고 할 정도.
카젠버그는 처음엔 탤런트 매니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연예계에 뛰어들었다가 영화 제작에서 성공을 거뒀다. 1950년 뉴욕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유력명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야심만만했다. 14세의 나이로 당시 뉴욕시장 후보 존 린제이 선거캠프서 활동을 시작하는데, 72년 린제이가 뇌물수수의혹으로 대선전에서 낙마하자 카젠버그는 정치에서 연예계로 방향을 틀었다.
파라마운트영화사 배리 딜러 회장의 비서로 일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 마이클 아이스너와도 인연을 맺었다. 84년 쇠락의 길을 걷던 디즈니의 CEO로 취임하는 아이스너를 따라가, 카젠버그는 디즈니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영화도 제작하는 곳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게펜은 80년대에 브로드웨이뮤지컬(’드림걸스’ ‘캣츠’등)과 영화(’위험한 청춘’ ‘유령수업’등) 투자로도 성공을 거뒀지만, 대중음악을 주무대로 했던 사업가. 4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속옷가게 운영으로 바쁜 부모 때문에 겪은 심리적 방황을 뮤지컬 음악으로 달랬다고 한다.
그가 연예계에 입문한 건 미국의 메이저 연예기획사 윌리엄모리스에이전시 우편물실에 취직하면서였다. 가수매니저가 된 그는 로라 니로, 잭슨 브라운 등 신인급을 키우다가 독립해 27세 때 어사일럼레코드를, 8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게펜레코드를 세운다. 이글스, 조니 미첼, 밥 딜런, 도나 서머, 엘튼 존, 에어로스미스, 건스앤로지스, 너바나 등의 아티스트들과 계약을 통해, 그의 레이블은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게펜레코드는 80년 12월 암살당한 존 레논의 생전 마지막 앨범 ‘더블 판타지(Double Fantasy)’를 냄으로써 처음부터 대박을 터뜨렸고, 90년 MCA에 5억3,000만달러에 팔렸다.
다시 각자의 길로
드림웍스는 두 차례 파산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97년 첫작품 ‘피스메이커’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슈렉’ 등 잇따라 흥행작을 내놓으며 할리우드드림을 일구어냈다.
하지만 창업 이래 지금까지 꿋꿋하게 드림웍스스튜디오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스필버그가 유일하다. 카젠버그가 2004년 가을 애니메이션 부문의 분사ㆍ독립으로 세워진 드림웍스애니메이션(DWA) CEO를 맡아 가장 먼저 떠났다. 게펜도 드림웍스의 주인이 2006년 파라마운트의 모회사 비아콤에서 2008년 인도 릴라이언스ADA그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결별했다.
스필버그는 ‘틴틴의 모험 : 유니콘의 비밀’로 3D영화 연출에 도전하는 등 여전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고, 카젠버그 CEO는 ‘3D테크놀로지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게펜은 2009년 뉴욕타임스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드림웍스 로고 밑자리에 그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딴 ‘SKG’를 남겨둠으로써, 엔테테인먼트 거물 3명의 DNA가 합체했던 유산은 계속 전해지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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