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수만세/ 85세 마라토너 김병례 할머니
올해 85세의 마라토너 김병례 할머니가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서 받은 트로피와 메달들을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김 할머니가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박상혁 기자>
흔히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26.2마일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극한의 레이스에 도전하는 마라토너들은 그래서 마라톤 완주에 무한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청년들도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체계적인 연습 없이는 쉽지 않은 마라톤을 버팀목 삼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올해 85세의 ‘노익장’ 할머니가 있다. 마라톤 경력 13년에 메달을 20여개나 보유한 ‘할머니 마라토너’ 김병례씨가 주인공이다.
71세때 막내딸 격려받고 도전 20여개 메달
4년전 남편과 손 잡고 완주 가장 못잊어
■도전의 시작
김 할머니가 71세가 되던 해인 지난 1998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막내딸의 ‘마라톤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말이 귀에 와서 박혔다. 젊었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할머니는 그 날 하룻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이 나이에 주책이란 소리를 듣지 않을까. 괜히 오며가며 가족들 걱정이나 끼치지 않을까. 아니야, 마지막 도전이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어릴 적 마라톤을 하던 옆집의 멋진 오빠 모습도 떠올랐고 그동안 평생을 남편에 기대어 살았던 자신에 대해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꼬박 이틀을 고민한 끝에 남편에게 귀띔했다. 마라톤을 해보겠다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의 답은 ‘도전해 보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해 무작정 LA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매일매일 달렸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는 할머니로서도 26.2마일을 쉬지 않고 달리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할머니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 기록은 6시간42분. 처음 기록 치고는 나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기록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 뒤로 꾸준히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근처 공원을 달렸다.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해온지 3년쯤 후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한인마라톤동호회(KART)를 알게 됐고, 동호회에 가입해 체계적인 체력 훈련과 연습을 시작했다. 이후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지금까지 받은 메달만도 20여개가 되는 진정한 마라토너가 됐다. 지난 2006년 LA 마라톤에서 6시간12분 기록을 냈고 지난해 헌팅턴비치 마라톤에서는 80~85세 여성 디비전에서 3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사랑도 추억도 마라톤과 함께
김 할머니는 “마라톤에는 내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20년 전 사업을 하던 남동생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뒤 스왑밋 사업을 하던 남편을 도와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평범한 삶이었지만 황혼기 나이에 마라톤을 알게 된 뒤 또 다른 인생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2008년 남편과 두 손 꼭 잡고 완주한 LA 마라톤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당시 마라톤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남편이 2007년 어느 날인가 “나도 죽기 전에 LA 마라톤 한 번 뛰어봐야겠다”는 말에 반가워 매일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준비를 해 다음해 LA 마라톤에 참가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과 함께 한 마라톤이었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는 “2009년 마라톤 대회도 남편의 명단을 나란히 올려놓았지만 그해 4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 지금도 마라톤에 참가, 달릴 때면 할아버지와 손잡고 뛰던 6시간40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질주는 계속된다
김 할머니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 나이 들면 더 바라는 게 없지. 그저 마라톤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죽기 전에 LA 마라톤 10번째 메달을 손에 쥐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했다. 마라톤과 함께 남은여생을 향한 김 할머니의 도전과 질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남2녀를 둔 할머니는 마라톤을 나갈 때면 자녀들이 아직도 잔소리를 한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막내딸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막내딸마저도 걱정을 해요. 그럴 때마다 건강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며 자식들을 달래곤 합니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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