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친기업’ 논란에 휩싸였다. 월마트와 AT&T 등 업계 공룡들이 연루된 대규모 소송에서 기업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잇따르자 시민단체 등에서 ‘편향성이 지나치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할인점 월마트의 여성 종업원들이 낸 직장 성(性)차별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례는 미국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성차별 소송이었다.
미국 최대의 통신기업 AT&T는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쾌재를 불렀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분쟁 시 집단 소송을 할 수 없다는 AT&T 측 약관이 소비자의 집단소송권을 인정한 주(州)법보다 우월하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또 최근 주 정부가 화력 발전 업체 5곳의 탄소가스 배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2심의 판결도 ‘부당하다’며 뒤집었다.
게임업계도 화색이다. 지난 27일 대법원이 ‘폭력적인 게임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가 이런 소프트웨어를 미성년자에게 판매ㆍ대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미국 시민자유연합의 스티븐 샤피로 디렉터는 29일 인터뷰에서 "최근 2년 동안 판결을 보면 대법원은 분명히 친기업적이다"며 "법정이 회사의 이익을 옹호하며 정의를 갈구하는 시민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폭력게임을 규제하는 법안을 주도했던 캘리포니아주 의회의 레란드 위 상원의원도 "대법원이 어린이들의 권익보다 업계의 이익을 중시했다"고 꼬집었다.
이중잣대 논란도 일었다. 대법원이 게임 규제 판결에서 폭력적 게임도 예외없이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예전에는 성(性)적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을 두둔하는 논리도 있다. 기업에 불리한 판결도 많이 나왔고, 대법관 9명이 치열한 논의 끝에 판결을 내놓는 만큼 절차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법원은 불법 이민자를 고용한 기업을 처벌하는 애리조나주 법안을 정당하다고 판정했고 기업기록 공개를 업체 측이 저지할 수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또 많은 친기업적 판결이 5대4라는 박빙의 표결로 결정되는 만큼 법관들의 보수ㆍ진보 시각차에 따른 논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로빈 콘라드 법률 총책임자는 "대법원의 근래 판결이 분명히 최선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최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대법원은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 5명과 진보 성향의 4명으로 구성됐다. 대법관은 종신직이라 탄핵당하지 않는 이상 계속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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