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인물
▶ 세인트루이스 명예영사로 LA 온 주디 드래퍼 판사
12일 명예총영사 및 영사회의에 참석한 한국계 혼혈 주디 드래퍼 판사는 한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한다. <박상혁 기자>
6.25 후 태어나 이름‘평화’
한국 위해 봉사기회 기뻐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세인트루이스 명예영사로 누구보다 앞장 서 한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인 주디 드래퍼(55·한국명 평화) 판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1일과 12일 LA에서 열린 명예총영사 및 영사회의에 참석한 12명 중 유일한 한국계인 드래퍼 판사의 어머니는 한국인 여이순씨. 드래퍼 판사는 “항상 내 몸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며 “한국인의 유산과 혈통을 잇고 있는 내가 미국에서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드래퍼 판사는 1955년 서울에서 근무 중이던 주한 미군 출신 흑인 아버지와 어머니 여이순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한국계 미국인이다.
6세 때 아버지 가족이 거주하고 있던 새크라멘토 지역으로 이주해 초등학교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던 드래퍼 판사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 힐에서 경영관계학과를 졸업하고 워싱턴 DC 하워드 법대를 거쳐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시도 자신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조인이 된 것도 어머니 여이순씨의 영향 때문이었다. 드래퍼 판사는 “법조인이 된 것은 판사가 꿈이었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며 “어머니는 항상 큰 꿈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말했다.
‘평화’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된 것도 한국 전쟁을 겪은 외할머니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어머니 여이순(73)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드래퍼의 외할머니가 6.25 전쟁 직후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평화’(Peace)라고 지었다”며 “당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딸이 세상의 평화를 가져다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외할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전국 아태변호사협회, 여성변호사협회, 미주리주 아시안 아메리칸 변호사협회 등에서 소외된 주민들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다 지난 2004년 세인트루이스 법원(Circuit Court Division 41) 순회 판사로 재직 중이다.
한국을 떠난 지 30년만인 지난 1990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기도 했던 드래퍼 판사는 앞으로 한국계 혼혈 아동들을 위한 봉사활동 계획을 갖고 있다.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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