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3년 졸업, 한국 독립운동에 기여
▶ 강경화 대사 “무기 아닌 외교로 싸웠던 전사”

로녹대에 설립된‘김규식 센터’ 오프닝 행사가 지난 13일 열렸다. 프랭크 슈샥 총장과 김규식 선생의 손녀 김수옥 여사가 함께 리본을 자르고 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 선생(앞줄 맨 오른쪽).
버지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로녹대에 ‘김규식 센터’(Kim Kyusik Center for Korean Studies)가 문을 열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임시정부 대표로 참석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모교인 로녹대는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없는 김규식 센터를 만들어 그의 활동과 업적을 기념하고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한국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200스퀘어피트 규모의 전시공간이 꾸며졌으며 지난 13일 공식 개관식이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워싱턴지부 임원들과 대학 및 한국 정부 인사 그리고 한국에서 김규식 선생의 손녀 김수옥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도 참석해 리본을 잘랐다.
프랭크 슈샥(Frank Shushock) 총장은 “1903년 로녹대를 졸업한 김규식은 한국 독립운동에 기여했고 국제사회에 영향을 미쳤던 선구자였다”며 “그의 이름을 딴 센터를 통해 앞으로 역사 연구 및 글로벌 학생들에게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축사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강경화 대사의 축사를 문인석 총영사가 대독했다. 강 대사는 “김규식은 무기가 아닌 외교로 싸웠던 전사였다”며 “블루릿지 산 넘어 조국 근대화의 꿈을 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축하 동영상을 보내 “로녹대 출신 독립유공자와 한인 유학생을 재조명하고 한국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의를 현지인들에게 전달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행사 참석자들은 한국어가 유창한 스텔라 슈(Stella Xu) 교수의 안내로 김규식 센터를 비롯해 캠퍼스 내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공간을 차례로 방문했다.
염영환 민문연 워싱턴지부장은 “세계 최초의 김규식 센터를 비롯해 100여년전 로녹대에서 공부했던 한국 유학생의 발자취를 따라 워싱턴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을 찾는 한인들도 많아지길 바란다”며 “생생한 역사의 현장, 버지니아 남부의 아름다운 소도시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881년생인 김규식 선생은 부모를 여의고 미국 선교사(Underwood)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가 영어를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1896년 미국에 유학 와 로녹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4년 귀국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참석했으며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맡아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며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납치돼 같은 해 12월 북에서 사망했다.
주소 Roanoke College Bank Building
Salem VA 24153(김규식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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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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